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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여름에는 민어가 최고지요!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34>


여름 보양식으로 갯장어와 민어가 최고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민어나 갯장어 요리를 한번 맛보는 것이 마치 연례행사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갯장어나 민어 가격은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갯장어는 전남 고흥, 여수나 경남 고성 등지에서 많이 잡히니까 당연히 먼 거리를 달려 왔지만, 민어는 서해안 어디서건 다 잡히는 어종입니다. 심지어 인천 근처 바다에서도 꽤 잡힌다고 들었습니다만 가격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친 가격'에 놀라 식도락가연 하며 폼 잡고 사는 사람이 좁쌀영감처럼 연례행사를 건너 뛸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OO갈비’에서 가장 비싸다는 설화등심 1인분도 솔직히 미친 가격입니다. 물론 매장 임대료, 인테리어, 종업원 임금 등을 고려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겠지만, 그래도 소비자 혹은 식도락가가 감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은 것은 분명합니다.


긴자의 미슐랭 쓰리스타 초밥 집에서 그렇게 비싸다는 참치 대뱃살도 넙죽넙죽 잘 사먹으면서, 겨우 민어나 등심 값 때문에 이 무슨 ‘난리부르스’냐 하시겠지요. 그러나 수산시장이나 산지 공판장에서의 민어 가격은 조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kg에 30,000~50,000원 사이입니다.

 그런데 민어회 중간사이즈에 스무 점 정도의 회가 나오므로 겨우 300g 내외가 나온다고 보면, 한 접시의 원가는 1만원 내외가 됩니다. 그러나 실제 식당의 민어회 가격이 원가의 8~10배 쯤 되니 결국 한 점에 대략 5천원 꼴이 되나요? 이 정도면 백성이 사랑한다 해서 생긴 民魚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밖에요. 이렇게 비싼 생선이라면 아예 황제가 먹는 생선으로 이름을 바꾸는 건 어떨까요? 아예 황어(皇魚)라고 말입니다.

결국 민어회 먹는다는 것은 각자 주머니의 한계와 객기를 테스트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호기를 부리며 마구 집어 먹느냐 아니면 쪼잔하게 한 점씩 음미하면서 먹느냐는 문제 말입니다.


민어에 관한 이야기는 꽤 많습니다.

민어가 우는 소리는 어린 아기 우는 소리와 비슷한데 바다 속에 긴 대통을 넣어 그 소리를 듣고 그물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여름 보양식으로 부잣집은 민어를, 가난한 사람들은 삼계탕을 먹었다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특히 호남 사람들이 민어에 집착을 하는데, 이는 여름 민어, 가을 낙지 그리고 겨울 홍어를 3대 별식으로 여겨서 일 것입니다.


민어는 회귀성 어종으로 여름철에 신안 앞바다(특히 임자도 근처)까지 올라옵니다. 그런 연고로 목포는 민어의 본향이 되었지요.(목포에 가면 영란횟집을 위시하여 많은 민어집들이 아예 '민어거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다 자란 민어는 1m가 넘기도 하는데 이 정도 크기면 별미인 부레도 엄청나게 크고, 암놈이라면 어란을 만들기에도 넉넉한 사이즈의 알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어란은 알 덩어리가 크기만 하면 생선의 종류를 가라지 않는데, 대개 숭어와 민어알로 만듭니다. 영암의 ‘김광자 할머니’는 숭어알 위주로 만드는데, 저는 아직 민어로 만든 어란을 맛보질 못했습니다. 속설에 따르면 맛은 숭어가 최고라 알려졌고, 민어가 그 다음이랍니다. 심지어 동태알, 대구알, 청어알로도 만들지만 맛은 별로라는군요.

민어로는 회, 전, 탕, 찜 등 못하는 요리가 없습니다. 회로 먹을 경우엔 잡은 지 열대여섯 시간 숙성을 시켜야 찰지고 쫀득한 육질을 보인답니다. 그래서 민어를 잡자마자 숨을 끊어 피를 빼고 비닐봉지에 넣어 공판장으로 보내는 것이지요.


제 개인적으론 민어에 대한 기억은 지금껏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목포의 ‘영란횟집’을 비롯하여 경향 각지의 유명하다는 민어 식당을 많이 가봤지만, 육질 쫀득하고 ‘우마미’가 있는 회를 전혀 먹어보질 못했던 것입니다. 그 때가 대개 5월에서 9월 사이였고, 게다가 복중(伏中)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논현동 '노들강'에서 제대로 민어가 걸려들었습니다. 첫 한 점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아~! 이 맛에 민어를 찾는구나"하고 속으로 탄성을 질렀으니까요.


그날 ‘노들강’ 본채엔 벤츠 S 클래스 타고 온 머리 짧은 아저씨들로 어수선했지만, 한편으로는 맛과 풍류를 아는 어깨들이라니 친근감까지 느껴집니다. 그러나 큰형님이 도착하니 덩치 큰 '병풍'들이 도열하여 일제히 "형님! 나오셨습니까?"하며 인사를 합니다. 순간, 에어컨 없이도 소름이 돋기 시작합니다. 괜히 눈 마주쳤다가 나이 어린 ‘깍두기들’한테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니 조용히 문을 닫고 먹어야지요.


'노들'은 노량진 근처의 동네 이름이고, '노들강'은 물이 흐르지 않는 모래땅이었다가 큰비가 오거나 홍수가 나면 생기는 강을 말합니다. 항간에 용산 쪽의 모래땅에 생기는 강을 이르기도 한다는데, 어원이 어떠하든 민어만 맛있다면 만사휴의입니다.



 남서해안 지역의 해산물을 모두 맛볼 수 있는 내공 충만 '노들강'


 스무 점도 채 안 되는 민어회와 껍질 그리고 부레 몇 조각... 이 접시가 ‘大’짜인데 십만 원을 홋가하니, 특등급 한우보다 비쌉니다.


큰 생선은 껍질을 비롯하여 버릴게 하나도 없지요. 민어의 등 쪽은 황금색의 비늘을 가졌는데, 비늘만 제거하고 바로 데쳐서 먹습니다. 특히 민어 부레는 별미 중의 별미입니다.


민어회의 양이 모자라 특별히 추가로 주문한 뱃살과 부레 그리고 껍질입니다. 부레는 내부에 울대가 들어 있어 썰면 이런 기하학적 무늬가 나옵니다.

부레의 씹는 질감은 약간 억세고 질깁니다만 바로 그 쫀득한 맛에 먹는 것입니다. 부레에는 콘드로이친 성분이 많아 이를 말린 뒤에 녹이고 끓여서 아교를 만드는데, 옛날 활(국궁)을 만들 때 접착제로도 사용했다는군요. 물론 지금도 활 제작 명인들은 민어 부레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민어전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민어의 살색이 발그레한 까닭에 얼핏 ‘스팸’으로 전을 만든 듯 보이지만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습니다.


마지막은 민어탕입니다. 신안 쪽에서는 된장을 많이 넣어 아주 진득하게 끓이지만, ‘노들강’은 약간 변형된 스타일입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