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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입속의 우리들의 보석(寶石)”

[최상묵의 NON TROPPO]-<19>

 

옛날 학창시절 해부학 실습을 할 때 사람의 두개골을 만지면서 그곳에 생생히 남아있는 몇 개의 치아를 본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치과의사가 된 것이 천직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때 그 두개골에 듬성듬성 박혀 있는 치아의 모양이 무척 이쁘고아름답게 느껴졌다고 기억된다.

오랜 풍상을 겪어 표면이 반짝반짝 윤이 나고 단단한 이쁜차돌맹이 같기도 해 옛날 필자의 부친께서 늘 아끼고 만지작거리시던 상아담배 물뿌리의 색깔과 흡사한 빛을 내고 있었다.

 

생명을 잃어버린 두개골의 박힌 치아의 색깔과 모양에서 야릇한 정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두개골에서 보았던 치아는 바로 상아(象牙)였다.

코끼리 이빨이 아닌 사람의 치아(人牙)이지만 죽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보석인 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사람의 치아를 만지면서도 아무런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치아에 매달려 지금까지 치료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요즈음 와서 그 치아가 다시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학창시절 해부학 시간에 얼핏 느낀 두개골에서 본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 다시 되살아난 것일까? 한 물건을(치아를) 수십여년 만지작거리다 보면 그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어떤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치아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생명체로 여겨진다.

이것은 치아 하나하나를 대할 때마다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겸허함을 내게 일깨워주는 교시 같은 것인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사람의 신체 중에서 조물주가 만들어준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보석이 바로 치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보석을 갈고 닦고 고치고 손상된 곳을 수복하는 마술사가 바로 우리 치과의사들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소중한 보석을 다루면서 그 보석을 함부로 다루는 불경스러운 일을 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버릴 수가 없다.

 

환자의 치아를 뽑는 일을 무심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뽑혀진 치아의 운명, 치아를 뽑히게 된 환자의 상실감, 치아를 뽑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들의 자책감 등을 생각하면서 치아를 뽑기 전에 서로가 많은 고민을 했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곧 치아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치아를 사랑하는 마음은 곧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도 통하는 일이다.

치아하나 뽑기가 어쩐지 겁이 나기도 하고 설령 뽑게 되더라도 매우 경건한 마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또 뽑지 않으면 안되는 충분한 배경을 설정하고 그 배경에 내스스로 납득이 된 연후에야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환자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며 또 많은 다른 방법의 시도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치아를 사랑하고 아끼고 아름답게 여길 줄 아는 정신을 깊이 간직할 수록 환자들 또한 우리들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존경하게 되리라는 사실은 너무나 평범한 진리이다.

 

필자가 대학에 재직할 때 치료실에서 겸자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이를 뽑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치아를 손으로 뽑을 수 있을 정도까지 치아를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존해 주는 치료를 한 연후에야 발치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후학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인 필자의 치료 철학의 일환이었다.

 

치아는 분명히 우리 치과의사들에겐 보석이다. 그 보석을 주인(환자)으로부터 맡아서 닦고 가꾸고 보존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이 바로 우리 치과의사들이다.

주인이 믿고 맡겨둔 보석을 우리들이 함부로 마음대로 다룰 수 없음을 물론이거니와 잘 보존되기를 바라면서 맡겨둔 보석을 잃어버리게 했거나 흠집을 내는 일을 한다며 그 보속의 주인은 다른 곳에 보석을 맡겨두고 싶어 서두르게 될 것이다.

 

치아의 수명이 사람의 수명과 다를게 무엇이 있겠는가? 치아의 수명은 종말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것에 대한 분명한 해답은 치아의 수명이 치과의사의 편협하고 성급한 판단에 의해서 함부로 좌우되어서는 안되리라는 생각이다.

 

한 사람의 사형수를 단두대에 올려놓기 까지 얼마나 많은 법률과 도덕적인 배경이 그 사형수를 보호하고 있는 지를 생각한다면 치아 하나를 단두애에 올려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