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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구강(口腔)으로 부터의 탈출”

[최상묵의 NON TROPPO]-<18>

 

 

필자의 대학생 시절이나, 청년치과 시기에 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가히 광적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였다. 그 시절은 가난하고 암울한 시기였다(60년도). 음악을 좋아하고 듣고 싶어도 가까이 할 수 있는 장소나 기회가 없었고, 더구나 오디오 장비나 레코드 같은 도구를 접하기는 더욱이 힘들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 교수로 취직(?)이 되면서 본격적인 오디오 애호가가 되었고, 음반 수집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군 P.X를 통해 흘러나오는 몇 장의 레코드, 아니면 외국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사들고 오는 몇 장(그 시절에는 10杖이상은 통관되지 않음)이 음반 구입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물론 값도 비싼 편이었다. 그러나 비싸고 싼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나마 없어서 못 구하는 판구이었으니까...어렵사리 구한 음반의 포장을 뜯고 윤이 반짝거리는 속 알맹이를 조심스럽게 꺼낼 때의 그 짜릿한 느낌, 그 순간의 행복. 밤새워가며 되풀이 듣곤 했던 기억들, 지금 생각하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더 좋은 시스템과 양질로 녹음된 콤팩트디스크가 지천으로 널려있지만 그때의 짜릿한 감흥과 행복감은 생겨나지 않는다. 음악이 우리 주위에 너무 풍요롭게 널려 있기 때문에 그 절실함이 없기 때문인 듯 하다.

 

음악이 단순히 생활의 즐거움으로 자기 승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취미나 수단이 되어야하는데도 나의 경우에는 음악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음악을 분석하거나, 해석하려했고 또 음악을 소유하려는 수집벽 같은 것도 생기면서 음악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 보다는 오히려 고통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음악으로 부터의 해방”이 되고 싶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음악에 대해 집념에서 서서히 자유로워지면서 내가 전공하고 있는 의학속으로 음악이 자유롭게 용해되어 들어오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더욱 편하고 느긋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해방감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접어든 어느날.

구강(口腔)으로부터 탈출되어 나와 보니 내 앞에 서있는 환자가 사람(人間)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입속의 질환만 보았지 사람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사람의 입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많은 세월을 보냈었다. 그 입속, 즉 구강 속에 모든 병리와 세상 진리가 있느 것으로 착각하면서...

요즈음 50년 넘게 행하여온 임상의 손을 놓으면서 이제는 의학 자체에서부터 탈출을 해보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의학도 의학 밖으로 나와 객관적으로 의료의 세계를 관조해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우물한 개구리처럼 「의료」라는 우물 속에서 서로 자기의 의술을 뽐내고 경쟁하면서 과연 우리들이 하고 있는 행동들이 의료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어떻게 생각 할 것인가? 의학 밖의 세상을 빠져나와 세상을 보면 세상은 너무나 넓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의학계가 너무 의학 본질 그 자체에 집착하고 그 속에서 안주하고 있지나않은지 걱정도 된다.

의학이 지나친 기술 기능, 위주로 치달리면서 인간을 의학에서 지나치게 배제시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의료는 어딘가에서 뚝 떨어진 특별한 위성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의료계는 사회 속에 존재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생물체 같은 것이다.

 

의료인들이 지나치게 인간의 질병과 건강을 장악하고 있다는 교만과 집념에 사로잡혀 내면적인 자유로운 사고가 경직되어 있다면 행복을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하는 용기있는 의료인이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의료인들이 지나치게 인간의 질병과 건강을 장악하고 있다는 교만과 집념에 사로잡혀 내면적인 자유로운 사고가 경직되어 있다면, 행복을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하는 용기있는 의료인이 결코될 수 없을 것이다.

 

의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우선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며, 그 자유는 지성적이고 훈련된 사유능력 안에서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인간은 자신의 힘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자유롭지 않으면 안된다.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 속에서 참된 의술이 창조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옛날 음악으로 자유로워짐으로써 행복감을 느꼈던 것과 같이 의학으로부터 보다 더 자유로워짐으로써 지금은 더욱 행복한 의사가 되었다.

 

그런데 진정으로 “의학으로부터 자유로워 진 지금” 필자는 의학적 아무런 행위(임상)을 할 수 없게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이건 큰 모순이며 또한 진리인 것도 같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