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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완 칼럼

공포의 ‘매독’, 과연…

[조성완의 고개숙인 남자]- <27>




“저, 그날 이후로 피부에 반점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해요. 겁나서 검사하러도 못 가겠어요. 선생님, 저 병 걸린 거 맞지요?”


하루에도 수십 개씩 의료상담에 대한 답변을 하다보면 어쩌다가 일을 저지른 청소년이나 사회 초년병들의 걱정이 가득한 질문들을 수시로 보게 된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이 자위행위를 하고서 막연한 죄책감과 성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해 오기도 한다. 1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들이 느닷없이 생긴 증상이나 성병 판정을 받고는 부부간의 신뢰가 무너져 험악한 분위기로 병원을 찾기도 하고, 결혼한 지 6개월이 채 안되어서 간단한 피부염으로 병원에 갔다가 성병의 일종이라는 말에 바로 이혼하는 신혼부부도 있다. 이처럼 미묘한 감정의 결정체인 성(性)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심한 공포심과 배신감, 수치심 등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이성이 마비되고, 병에 대해 차분히 알아보고 의사의 조언대로 적절하게 대처해야겠다는 생각조차하기 어려운가 보다.


의과대학에 다니던 25년 전만 해도 실습을 나가보면, 대학병원 외래에 토요일이면 주사를 맞으러 몰리던 매독 환자들이 있었다. 평일 날 바쁜 외래환자들 때문에 과 사정상 몰아서 주사를 맞는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게 느낄 수 있는 문제인지라 상대적으로 환자가 적은 토요일로 배정한 일종의 배려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무튼 그 때만해도 매독이 제법 많아 반나절에도 20명이 넘는 환자들(대부분 청장년의 남성이었고, 소수의 여성도 있었다)이 줄을 이어 주사를 맞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쌤통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는 비뇨기과 의사가 되어 성병의 진단과 치료의 첨병이 되다보니 매독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했다. 예전에 비해 환자의 수는 매우 줄었다. 하지만 아직도 소수의 환자는 있고, 오히려 그 수가 적다보니 약간은 소외되는 듯도 하다. 단지 성에 무지했다는 이유만으로 더러운 사람처럼 취급받거나 병을 키워 많은 후유증을 안게 되는 환자들을 보면 오직 안타까울 뿐이다. 무좀 때문에 발가락 사이가 곪듯이, 이빨을 닦지 않아 잇몸이 곪듯이 단지 한 가지 세균에 감염되어 피를 타고 여기저기가 곪는 병 일 뿐인데 ‘성병’이라는 낙인 때문에 어디 가서 검사도 쉽게 못 해보고, 신체 여기저기 이상한 증상이 보여도 인터넷이나 의학사전만 뒤적일 뿐 병원으로 나서지 못하는 잠재 환자들이 꽤 있으리라 짐작한다. 반대로 단지 가벼운 피부염이나 정상적인 신체반응을 찜찜했던 성관계 때문에 성병으로 믿어 버리고 아무에게도 말을 못한 채 무시무시한 상상만하다가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리는 ‘스스로 환자’도 많다. 특히 인터넷으로 많은 의학정보를 손쉽게 검색하다보면, 의학에는 병에 걸리고 낫게 되는 확률의 개념이 반드시 필요한데, 매우 드문 질환의 가벼운 증상 하나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의심 없이, 아니 의심은 해도 병의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공포증(포비아)’ 환자가 유독 성병에 대해 많은 실정이다.


매독의 초기 증상으로 성기 근처에 ‘무통성 궤양성 결절’이 생긴다고들 하나 전부에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병의 진행에 따라 매우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므로, 의심이 나면 혈액검사로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매독은 불안한 성관계를 했다고 잠 못 이뤄할 정도로 흔한 질환은 아니며, 초기에 발견되면 약물치료로 얼마든지 완치되는 염증질환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많이들 받고 있는 신체검사에서 일차적인 매독검사에 양성(이상이 있다는)판정을 받고 얼굴이 노랗게 되어 병원을 찾기도 하는데, 일차 스크린 검사들은 병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내는 것에 매우 뛰어나지만 실제 감염이 안 되었는데도 이전에 앓았다든가 다른 질환 등에 의해 가짜로 양성으로 나올 수 있다. 이럴 때는 비뇨기과 전문의를 찾아 정밀 이차검사로 확인해 보고 의심되면 일정기간 약물치료를 받고 한동안 가끔 추적검사만 하면 그만이다. 


글: 조성완

이윤수조성완 비뇨기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