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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서툰 치료는 병 보다 더 나빠!”

[최상묵의 NON TROPPO]-<14>

 

현대 의학은 그 위대한 기술과 효율성에 도취되어 의술이 만능인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인체를 마치 분해할 수 있는 기계나 부품으로 생각하고 잘 기름 치고 닦고 관리만 하면 언제나 새롭고 반짝이는 건강이 탄생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하물며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게 된 것도 의술의 발달에 따른 장비의 개발이나 약품의 개발로 인해서 된 것처럼 현대의학은 주장하고 싶어 한다.

 

물론 특정질병에 대한 예방, 치료 방법 등이 개발됨으로 해서 수명 연장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연장은 사회경제적 변화와 생활양식의 개선, 삶의 환경개선들의 효과 때문인 것이 더 많다. 현대 의학은 건강은 만들 수 있는 것현대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은 건강은 창조하는 곳이 될 수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요즈음 의사들은 과학기술로 무장된 값비싼 첨단 의료장비에 대한 의존과 신뢰도가 지나쳐 남용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진료방법을 선택해도 건강을 얻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경우에도 고급자원을 남용하여 불필요한 의료비 상승을 부추기고 첨단 장비에만 둘러쌓인 의사들은 당연히 환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니 듣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의사 환자간의 신뢰는 점점 무너지고 환자가 치료의 주체적 입장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객체로 밀려나게 되고 심지어 침묵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환자와 의사의 대화의 단절은 의사들 스스로가 수의사처럼 처신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의사는 말 못하는 동물은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다. 환자는 분명히 인간이며 의료 분야에서 대화의 상실로 비인간화 되어가는 현상은 현대의학이 풀어야할 큰 숙제이다. 환자들 역시 새로운 치료법이나 첨단이술에 대한 성급한 호기심이나 선호도에 말릴 수 없는 조급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약이나 수술은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또한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되지 말라는 옛날 의학 격언도 있었다.

 

의사나 환자 모두가 새로운 치료법, 첨단 치료법의 총체적인 판단이나 예후를 오래 지켜보지 못하고 오히려 열광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환자가 의사의 전문적 지식과 기능을 신뢰하여 의존한다는 사실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그러나 신뢰하는 것과 맹종하는 것은 다르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많고 다양한 치료법들이 태어나고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그 치료법의 시행기준은 세울 수 있는 엄격한 임상연구나 과학적 규명을 미처 할 수 없다는 점이 불행한 일이다.

 

19세기에 의사들의 잠언 중에 자신이 무엇을 왜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서투른 치료는 병보다 더 나쁘다(The bungling remedy is worse than Disease)”는 영국의 격언도 있다. 그러나 현대의사들에겐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격언이 아닐까 싶다. 20세기를 거쳐 21세기까지 오면서 의사들은 지나치게 질병치료에 자신감은 갖게 되었다. 항생제의 발명으로 감염성 질환은 박멸하는 개가를 올렸으며 많은 수술법의 발달로 몸속의 병소를 적출 퇴치시키는 것에 성공하고 또한 몸속을 세밀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영상기술이 발달되면서 의학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실 의사들은 고통스럽더라도 치료에 자신이 없을 경우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통을 겪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의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학적 관행에 의한 고집 때문에 자기가 받은 진부한 훈련이나 지식을 지나치게 신봉하고, 일시적인 유행의 의학적 가치에 매료되어 과학적 영웅심으로 불필요한 치료를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술이 제 아무리 진보되었다하더라도 의술의 벽이 인간의 존엄성을 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의술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일 뿐이다.

 

우리는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언제나 완전한 치료를 하는 의사로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의사는 언제나 자기가 처치한 의학적 시술에 대해 최선을 다 했는가를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회의를 갖는 일에 소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한다는 행위는 농부가 농사를 짓거나 동물을 기르는 경우처럼 자연의 평형을 유지하거나 회복시켜주는 것과 꼭 같은 행위이다. 이 때 의사의 지식이나 능력은 과학적 지성의 능력의 범위를 넘어선 경지를 말한다. 의사의 지식은 숙련공의 기술과는 다르다. 의사에게는 생산해 낼 작품이 없다. 「건강은 의사가 하는 활동의 목표일 뿐 만드는(생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