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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행동하는 환자

[최상묵의 Non Troppo] ⑤

 

현대 산업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인간의 생활이 어떤 제도나 규범에 예속된 인간이 점차 소외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 받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개인의 인간성이나 개성, 독창성 등이 거대한 문명이란 이름의 톱니바퀴 속의 부속품처럼 전락돼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사실은 보건의료 분야에도 예외는 아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첨단의료장비와 의술이 개발되어 보다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그 반면에 의료에서 점점 인간(사람)이 빠져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게 됐다.

 

의술에서 인간성 경시현상이 발생되는 원인은 의료제도의 문제, 사회구조적 문제, 의학교육의 문제 그리고, 정치, 경제적 문제까지를 포함하는 매우 다양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경시의 근본원인은 환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환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정신을 실천하는데 의료인 자신들의 적극적인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의사들이 질병을 치료하는 행위는 표면화된 신체적인 이상증상만을 해소하는데 주력하고 궁극적으로 질병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질병자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질병을 가진 인간에 대한 지식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 질병이 있어 의사를 찾았을 때의 환자는 단순히 병자(病者)가 아닌 병에 대한 다양한 상상과 상처 난 아픔을 가진 한 인격체이다. 의사도 사람이고, 환자도 사람이고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Doctor-Patient Relationship)의 근본적인 것은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상호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들(치과의사)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구강(口腔), 치아(齒牙)라는 단순한 생물체가 아닌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인간을 상대로 진료를 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인간상호간의 심리 사회학적 성향(Psychological & Social make up)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여 구체적인 인간체험과 경험마저도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선의의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들은 구강이나 치아 자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치아를 가진 사람을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 치의학은 역학(mechanics)이나 기술(technigue)등이 우선된 단순한 병소 부위를 제거, 치유하는 시술에서 비롯되어 발달해 왔지만 점차 기본적인 생물학적 이론이 도입되면서 다른 조직과의 연계성을 고려하면서 현대 치의학은 치아 자체 안에 국한된 지엽적인 치료형태를 벗어난 ‘치아를 가진 사람’을 치료하는데 그 근본개념이 있음을 강조하는데 이르렀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구강영역의 전문지식의 습득은 물론 인간에 대한 연구도 아울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치과치료의 심리, 사회학적 성향에 대한 여러 가지 배경을 분석해야 하며 인간 상호간의 행동의 기본 원칙을 규명하여 환자의 심리적 기본원칙을 실제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치료의 승패는 새로운 장비나 기술이나 호사스러운 환경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치과치료는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돌봄의 거래이기 때문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