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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치료는 상품이 아니다.

[최상묵의 Non Troppo] ④

옛날 우리 의료인들은 누구에게나 침해 받지 않는 귀족적인 위치를 향유해 왔음을 부인 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 시책으로 보험제도가 도입되고 의사, 치과의사 숫자가 타의에 의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되면서 의료의 과잉 생산시대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정부관료적인 사고는 의사의 숫자를 많이 늘려 놓으면 저절로 의사들의 콧대가 꺾일 것이고 따라서, 문턱도 낮아지게 될 것이라는 극히 공리적인 계산에서 나온 사회주의적 발상이 지금 우리 의사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환자들도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보험제도에 의한 의료행위의 획일화 내지 규격화 되면서 치료자체가 일종의 상품 같은 품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의료행위를 상품과 마찬가지로 포장을 해서 그 값을 일정하게 매김 해 놓고 환자들에게 팔아 치우는 행위나 뭐 다를 게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의료의 품위와 권위가 실추된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도 노래 부르는 숫자대로 값을 받지 않고 그 가수의 인기도나 경륜에 따라 스테이지 단위로 개런티가 결정되며, 식당에서 파는 음식인 경우 똑같은 자장면도 고급식당이나 어떤 그릇에 담아 파느냐에 따라 그 값이 차이가 있거늘 하물며 의술의 경우에만 유독 보험이란 미명하에 획일적인 값을 매김 하는 일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행위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주는 것이 그 행위의 질을 늘리고 사기를 앙양시키는데 필요 불가결한 조건인데 하물며 의료 행위에 그런 인센티브를 무시해 버리는 처사는 결국 그 수준을 하락시켜 종국에는 자멸하게 되는 현상을 맞게 될 것임이 불을 보듯 명료해진다. 의료행위의 수량(Quantity)은 충족할지는 몰라도 자질(Quality)의 향상은 꾀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을 초래 할 것임에 틀림없다.

 

의료의 대중화는 얼핏 보면 국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듯 하지만 떨어지는 의료의 질 때문에 결국 멀리 보면 손해를 보는 쪽은 국민이 된다. 값싼 비지떡은 우선 먹기 편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고급스런 영양가 있는 음식을 찾게 되는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된다면 국민 모두가 영양실조 현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의사들은 착하디착하게 지금까지 정부시책에 순응하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진료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보험 제도를 벗어나려는 변칙치료행위가 생겨나고 보험품목은 경시하게 되고 보험이 되지 않는 과목에만 신경을 쓰는 진료의 변태행위 현상이 생겨나기도 한다. 치과에서도 예방치료나 보존치료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수복치료에만 신경을 쓰는 경향은 치과진료 발전에 기형적인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요즘 임플란트술식이 번창하는 현상도 이러한 의료제도의 모순이 빚어내는 하나의 현상이다.

 

우리들은 인공치아를 매식하기 전에 먼저 이를 뽑지 않는 치료법과 치아를 항구 보존하는 치료법에 더욱 관심과 애정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제도가 우리들의 목을 한없이 조여 오더라도 우리들은 그 제도를 뛰어 넘는 소신과 품위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태도야 말로 국민들에게 신뢰 받는 직업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