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크 뽑기와 이빨 뽑기

2015.11.29 08:54:21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72>


‘이빨’은 치과의사가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치아라는 ‘우아하고 고급진’ 단어를 놔두고 굳이 이빨이라고 낮춰 부르는 행위 자체가 치과의사를 낮게 보려는 심리라며 지레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이죠. 그러나 일반 환자(언중)들이 쉽게 부르는 말이고 일상에서 익숙해진 단어라면 부러 피할 일도 아닙니다.


다만 낮술에 취한 환자가 갑자기 불쑥 들어와 "이빨 뽑아줘~!"하면서 반말 비슷하게 지시하는 환자들을 보면 저도 속으로 '욱~'하곤 합니다. 게다가 잘 치료하면 사용할 수 있는 치아를 뽑아달라고 할 때는 답답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눈에 결막염이 생겨서 아프거나 가렵다고 안과에 가서 "눈깔 좀 뽑아줘~!"하는 사람이 없지 않느냐면서 타일러 보냅니다. 그러면 속으로 뜨끔 하는 것이 생기겠지요.
각설하고, 제가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려면 일단 코르크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꼭 이빨을 뽑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도 같거니와 뽑았을 때의 묘한 쾌감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뽑다가 중간에 코르크가 부러지거나 치아의 뿌리가 똑 하고 부러졌을 때도 대체로 같은 난감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기구를 조심스레 다뤄가면서 부러진 코르크나 치아 뿌리를 최종적으로 무사히 제거했을 때 오는 쾌감은 진짜 '오르가슴' 그 이상입니다.


그런데 요즘 뉴질랜드나 신세계 와인들 중에는 PP캡으로 코르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와인의 맛에 있어서도 코르크와의 차이가 없다고 하고, 코르크의 변질에 의한 와인의 산패까지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칠레 쪽과 미국 쪽에도 코르크가 아닌 합성수지 같은 재료로 이를 대신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재료들은 중간에 부러질 염려가 거의 없는 것이죠.
그러나 세상을 편하게만 살면 재미가 없습니다. 성당에서의 지루한 미사 의식도 다 의미가 있고 신앙심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고, 절에서 백팔배나 천배를 하는 것도 정성을 들인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힘들여 하는 것이죠. 편하자고 하면 교회나 절까지 갈 것도 없이 집에서 간단히 기도하면 될 일이고 딱 한 번 절을 하면 될 터이고요.


치과의사가 와인을 즐기려면 대체 몇 가마의 ‘이빨’을 뽑아야 가능할까요? 저는 농담 삼아  평생 한 가마는 뽑았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한 ‘바께쓰’ 정도가 아닐까요? 중요한 점은 뽑다보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것이지, 와인을 마시려고 무리하게 뽑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요.
집에서 뽑은 코르크는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편인데 이것도 한군데로 모아보면 큰 ‘바께쓰’로 하나는 되겠어요.

 

 모아둔 코르크 통에 태극기까지 꽂아두었습니다. ^^

 왼쪽 디캔터 위의 닭모양 스크류는 20년 전 포르투갈 여행을 할 때 구한 겁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


 















석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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