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인 교황을 위한 와인 ‘샤또네프 뒤 빠쁘’

2014.12.12 05:14:15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50>

 우리나라 입시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로 유명하지요. 그래서 요즘의 고3 담임이나 학부모라면, 족집게 도사가 되어야 하고 몇 차 방정식보다 어려운 대학별 입시사정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 때는 이과학생들은 국사와 윤리를 제외한 문과 한 과목만 선택이었고, 이과 과목은 전부 필수였습니다. 그러니 전국의 이과 학생들은 가장 점수 따기가 용이한 ‘국토지리’나 ‘사회문화’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골치 아픈 연대 외우기를 해야 하는 역사 관련 과목들은 다들 외면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사나 동양사는 남들이 이야기 할 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고백하건데, 후에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두어 번 통독을 하고서야 대충 이해를 했습니다. 물론 더 궁금한 것은 짬짬이 책을 찾아보기고 했고, 역사소설 등을 통해 지식을 쌓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한 나라의 입시제도가 개인의 지적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겠더군요.

서양사에 '아비뇽의 유수'라고 명명된 교황의 굴욕은 그 이전에 있었던 '카놋사의 굴욕'과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놋사 사건은 왕이 교황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교황의 세력이 약해지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종국에는 프랑스 국왕이 자기 맘대로 임명한 교황을 로마 교황청이 아닌 아비뇽에 머물게 하여 자기 휘하에 두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십자군 전쟁과 더불어 세속을 지배하는 왕과 신권을 상징하는 교황과의 끊임없는 투쟁사가 곧 서양 중세사라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시켜드릴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 지역 와인 이름인 '샤또네프 뒤 빠쁘'를 직역하면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이 되니 곧 아비뇽 교황청이랄 수 있습니다.

결국 아비뇽 인근의 포도밭들은 교황과 교황청에 와인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죠. 대개의 와인 초심자들은 샤또네프 뒤 빠쁘 와인이라고 하면 하나의 와이너리에서 나오는 줄 착각을 하지만, 이 동네에 가면 수많은 포도밭들이 있고 각자 생산한 와인에다 자기 고유의 레이블을 붙입니다. 다만, 제일 큰 글씨로 ‘샤또네프 뒤 빠쁘’는 꼭 쓰고 그 밑이나 위에 자기 와이너리 이름을 씁니다.


이 동네 와인도 샤또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로버트 파커라는 와인 평론가(개인적으로 ‘의미 없다~!’입니다만)가 백점 만점에 백점을 준 와인도 있는데 가격은 우리 용어로 ‘후덜덜’입니다.


샤또네프 뒤 빠쁘 와인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포도 종류를 13가지를 섞어야 한다는 룰도 있으나 이를 제대로 지키는 경우는 없습니다. 샤또마다 알아서 섞긴 하지만 대개 그루나슈 품종이 지배적이고 시라즈도 많이 넣습니다.

와인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에 따르면 이 동네 와인이 맵고 짠 한식과 가장 어울린다고들 합니다. 그러니 적당한 가격대의 샤또네프 뒤 빠쁘 와인을 좀 사두었다가 집에서 지인들과 고기를 구울 때 꺼내면 좋을 듯도 하군요.

샤또네프 뒤 빠쁘가 있는 아비뇽까지는 니스에서 출발해서 A8번 고속도로를 타고 근 270km를 달려야 합니다. (프랑스 고속도로에서 A라는 글자는 종착지가 '파리'라는 뜻이라는군요) 쉬지 않고 달려도 3시간은 족히 걸리는 길이지만, 깜빡 졸면 중요한 볼거리 하나를 놓치게 됩니다. 바로 액상프로방스 못 미쳐서 우측에 보이는 거대한 바위산입니다. 마치 오스트레일리아 울룰루의 에어즈 락(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도 나왔던)처럼 희한하게 생겨먹은 바위산인데, 화가 세잔느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졌지요. 그 산 이름은 ‘생 빅뜨와르’입니다. 생 빅뜨와르는 세잔느가 어렸을 적부터 어른이 되어 유명한 화가가 되는 것을 지켜봐왔고, 또 스스로 세잔느의 평생 모델이 되었지요.

샤또네프 뒤 빠쁘 마을에서 좀 알아주는 집안의 식사초대를 받았습니다. 대개 서구의 가정식이란게 우리와 달라서 식사 과정은 일반적인 레스토랑과도 비슷하지만, 그 동네에서 잡은 야생동물요리와 그 집안에서 만든 와인 그리고 계절에 맞는 식재료가 특징입니다.

독일 유머인지는 모르겠으나, 4월 아스파라거스는 숨겨놓은 애인에게 주고, 5월 것은 자기가 먹으며, 6월은 아들에게, 7월은 기르는 말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8월 끝물 아스파라거스는 마누라에게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4월과 5월의 유럽여행에서는 아스파라거스 맛보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럼 4, 5월 유럽 여행은 누구와 가야 하나요?)

샤또네프 뒤 빠쁘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각 집이 와이너리 하나씩은 소유한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키 작은 포도나무들 입니다. 우리나라의 식용 포도 종류와는 조금 다르지요. 요 정도면 수령이 수십 년이 지난 것들입니다. 대개 100년 가까이 포도를 생산해 내지요.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긴 와이너리 사장님. 부모 잘 만나서 어마어마한 땅도 물려 받았습니다. 적어도 은수저는 물고 태어난 것이죠. 키가 180이 훨씬 넘는 미인인 마누라는 실제로는 최근 동거녀랍니다. 그럼에도 아들하고 동거녀하고도 매우 친합니다.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지요? 와인너리 사장들도 다른 사람처럼 결혼하고 이혼하고... 다 합니다만, 재혼은 잘 하지 않고 아예 초혼부터 동거도 많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하니, 이혼하는 순간 포도밭은 둘로 쪼개집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의 와이너리가 이혼 몇번하면 형해화 되기 십상인 게죠. 그러니 결혼 대신 동거가 당연한 선택 아니겠습니까?

저희를 초대한 포도밭 주인집 외관입니다.

2층 창 위에는 해시계가 있습니다. 이 동네에는 제법 사는 집 벽에 해시계가 있는 집이 많더군요. 멀리 한국에서 자칭 ‘귀족’들이 왔다고 하니까 집안과 와이너리 구석구석 다 보여줍니다.

매미 모형을 휴게소마다 팔던데, 아마도 론 지방의 상징인 것처럼 보입니다.

거실엔 이미 점심 준비가 완료되었군요.

이거 다 마시기 전엔 못 가게 한답니다. 그래서 가방에 몇 병을 쑤셔 넣었지요.

이 집의 대표 와인입니다. 도멘 라 밀리에르!!

화이트도 만들고 심지어 로제도 소량 생산합니다. 샤또네프 뒤 빠쁘에는 로제가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실제 경험하지 않고 쓴 글이 분명합니다.

식탁 위를 생화로 예쁘게 꾸몄습니다. 이 정도 센스면 동거녀도 수준급이지요? 상당한 미모이긴 한데, 제 직업이 치과의사가 아니랄까봐 앞니 사이가 벌어진 것만 보입니다.

테이블 셋팅이 웬만한 레스토랑보다 더 낫습니다.

역시 4월과 5월엔 아스파라거스와 초록콩의 계절이라더니 프로방스 어딜 가나 두 재료는 꼭 올라옵니다.

산비둘기 요리입니다. 프랑스 귀족들은 자기 영지에서 사냥한 들짐승, 날짐승으로 요리한 음식을 손님에게 내놓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런 요리를 ‘지비에’라고 하는데 일본 동경에만 가도 지비에 요리 전문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프로마쥬도 먹어야지요.

디저트도! 이 정도면 가정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테이스팅하고 뱉는 잔, 즉 퇴주잔입니다만 저희는 뱉지를 않고 남은 와인을 모아서 휘저은 뒤에 폭탄을 만들었지요.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



석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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