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보면서 호흡을 생각지 않는 잘못"

  • 등록 2025.06.04 16: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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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기획Ⅰ] '숨길'을 중심으로 치의학 바라보기


이 글은 ‘숨길(airway)’을 중심에 두고 치의학을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숨을 쉬는 일'은 오랫동안 내과나 이비인후과의 영역으로 여겨졌고, 치과는 구조적·기능적으로 그 경계 밖에 있었다. 그러나 '호흡의 기술'과 같은 대중서와 논문들, 그리고 미국과 유럽 일부 개원의들의 임상 변화는 이 오래된 분할선을 다시 흔들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숨 쉬는 일이야말로 치과가 놓쳐온 핵심 역할’이라는 문제 제기와 ‘이를 통해 더 넓은 치료적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제안은 한국 개원가에도 조용한 파장을 일으키는 중이다.

 

“입을 다물고 코로 숨 쉬세요.”
이 단순한 조언이 평생의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호흡의 기술(Breath)'이라는 책을 펼쳐보는 것도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임스 네스터는 이 책에서 인류가 점점 '잘못 숨 쉬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가 지목하는 ‘잘못된 숨쉬기’의 핵심은 바로 구강호흡이다. 어릴 적부터 입으로 숨 쉬는 습관이 굳어지면 얼굴은 길어지고 턱은 뒤로 밀리며, 혀는 낮은 위치에 머무르게 된다. 입술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는 턱 성장 방향이 바뀌고, 윗턱은 좁아지며 위쪽으로 눌려 올라간다. 결과적으로 비강은 더욱 협소해지고, 산소 공급이 줄면서 뇌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책은 인류가 언제부터 이렇게 숨을 헐떡이며 살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그 전환점으로 저자는 ‘음식을 부드럽게 조리해 턱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된 시기’를 지목한다. 씹는 근육이 약해지고, 턱이 작아지면서 얼굴 구조 자체가 변화했고, 그로 인해 좁은 악궁, 휘어진 치열, 자주 막히는 비강과 수면장애로까지 연결된다는 것이다. 코 대신 입으로 숨을 쉬는 습관은 단지 생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구강 내 구조의 변형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구강의 천장이 곧 비강의 바닥’이라는 해부학적 사실은 치과의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숨길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코만 들여다봐서는 충분치 않다. 오히려 구강의 형태, 혀의 위치, 상악골의 성장 상태 등을 함께 파악하는 것이 더 실질적인 접근이 된다. 예컨대 상악의 확장을 통해 악궁이 넓어지면 비강 공간도 함께 넓어지고, 이는 곧 호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비강이 넓어졌다고 해서 흡입되는 산소량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산소가 얼마나 저항 없이 들어오는가, 즉 ‘들숨의 효율’은 분명히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치과는 숨길의 관문이자 조율자가 될 수 있다. 특히 어린이 교정이나 설계 중심의 보철 진료를 다루는 임상가라면 더욱 그렇다. 환자의 혀가 낮게 위치하거나, 구개가 좁고 깊으며, 상악이 움푹 들어가 있는 경우에는 단지 교합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호흡의 루트가 어떻게 협소해졌는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 눈에 띄게 긴 얼굴형, 입 안에서 혀가 설 자리를 잃은 환자들은 '구강 구조'를 ‘호흡’이라는 틀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루에도 수만 번 반복되는 호흡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잘못된 습관이 고착되어도 자각이 어렵고, 구조적으로 굳어지면 교정도 쉽지 않다. 진료실에서 자주 마주하는 좁은 턱, 뒤로 밀린 하악, 전방 개방 교합 같은 양상 역시 ‘숨쉬기’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호흡의 기술'은 단순히 ‘어떻게 숨 쉬는가’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왜 이렇게 숨 쉬게 되었는가'를 묻고, 그 과정에서 구강, 턱, 비강, 혀, 자세 등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해부학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이 말하는 '숨'은, 어쩌면 지금껏 치과가 놓쳐온 미래일 수 있다. 입으로 숨 쉬는 세상이 익숙해졌지만, 그것이 정상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익숙함 속에서 누적된 호흡 장애가 다양한 전신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그 출발점은 치과에서 가장 자주 들여다보는 ‘입’일지도 모른다.


입 안을 들여다보는 치과의사가 이제 ‘숨길’을 보기 시작한다면, 진료의 범위는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 다음 회에서는 숨길이라는 구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상악골의 형태가 그와 밀접하게 연결되는지를 더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정태식 cli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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