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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 천재일 필요는 없다

[최상묵의 NON TROPPO]-<42>


지금 시대의 우리나라 의사(치과의사)들은 옛날에 비해 인기도 떨어지고 존경심마저 받지 못하는 사회적 고립 상태를 겪고 있다. 우리들은 이러한 사회적 고립상태를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느끼고 싶어 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령, 고립되고 있는 원인을 알고만 돌리려 할 뿐 불만과 불신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못하고, 또 하지 않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의사들이 스스로 높은 자부심을 가지는 것과는 반대로 국민들로부터는 이기적인 집단으로만 비쳐지고 있다는데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그 원인은 잘못된 의료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부분도 많지만 근본적인 것은 전문직업의식의 취약성에서 비롯되는 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의사들의 불친절함과 권위주의적 태도에 대한 불만과 비판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우리들의 삶에 있어 의료 문제는 주위에서 언제나 흔하게 일어나는 보편적인 일이며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따르는 문제점(불평, 불만)들이 다른 분야에서 보다 날카롭게 노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대의학은 눈부실 만큼 과학적 이론으로 무장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경지에 도달한 셈이다. 의과학(medical science)의 발전으로 인해 인체 미세구조를 규명하고 질병에 대한 분자단위의 생화학적 변화를 조각조각 분해하여 질병의 발생과 진행 과정이 규명되고 실제 임상에 적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첨단 과학적 의학이 모든 인류에게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는가?


현대의학에서 전염병 퇴치에 획기적인 승리를 거둔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 아직도 고혈압, 당뇨, 혈압 같은 만성 퇴행성질환에는 마법이 걸리지 않는 모순에 봉착하고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과학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의학의 본질 때문에 의학교육과정에서도 인간미 넘치는 의사를 배출하는 커리큘럼은 어디에도 없다. 공부해야 할 것도 너무 많고, 의학에 그 따위 덕목이 가르친다고 길러지겠느냐? 그래서 아예 가르칠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적 의학지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의사들에게 테크놀로지를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의학의 인간적 측면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핵심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의사와 환자간의 협력적인 인간관계를 만듦으로써 가치관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 의학의 인간적 측면은 의료의 조화를 추구하게 되며 교육으로서도 얻어질 수 있는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과학적 의학의 기반인 환원주의에 기초한 질병과 치료의 개념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전인적인 의사와 환자관계가 왜곡되고 역동적인 건강 개념과는 맞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


또한 의학의 지나친 전문화 역시 일반 사람들의 건강관리권을 박탈하고 사회문화적 의원성 질환(Iatrogenic disease)을 일으켜 특정 사회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의학이 아무리 과학 이론으로 단단히 무장을 했다 하더라도 의학은 인체를 다루고 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애배하고 불확실한 부분이 너무나 많이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이야 말로 우리 삶의 실체이며 의학 본연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노련한 의사는 의학이 불확실성이 너무 많은 분야임을 잘 알고 있는 의사이다. 질병이 있어 불확실성은 질병증상의 일부분이다. 확실하지 않은 확신은 오히려 정확한 것이 못 될 수도 있다. 의사들이 무당 족집게처럼 단번에 진단을 내리고 치료법을 결정하는 의사를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의사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의사들도 처음부터 단번에 진단, 치료법을 결정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다림도 진단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동료에게 자문을 구하고 묻는 것을 꺼려서는 안된다. 의학은 협동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유능하고 실력 있는 의사 일수록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깨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불확실성에 대해서 환자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질명의 진단, 치료나 그 예후에 있어서 100% 확실한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질병의 상황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결정이 가장 현명한 것인지, 어떤 방법이 궁극적으로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지를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추정해 내는 최선일 뿐이다. 의사가 환자의 요구를 잘 이해하고, 존중하고, 충분히 설명해줄 때 환자는 그 불확실성을 기꺼이 수용하게 된다. 의학(의료)에서 불확실성은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불확실성을 거부하고 지나치게 완벽한 결점만을 적용하면 오진과 과실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진료에서 불확실성을 최소한 줄이고 최선의 방법을 찾는 길은 환자의 이야기(story)를 잘 듣는 일이다. 의료는 화자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환자의 이야기는 환자만의 언어로 아무렇게 흘러나오는 일화의 뭉치에 불과하다. 그 이야기는 그 환자의 품성과 교양과 지성의 범위 안에서 형성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다양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환자의 주소(chief complaint)라 한다. 환자의 주소는 의학용어가 아닌 환자의 언어로 표현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의사가 재구성하고 질서를 세우고 이치에 맞게 규명하고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면서 의학적인 이야기로 다시 구성해야 한다. 훌륭한 의사는 결국 인간적인 온전함과 환자중심의 치료계획을 세우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 천재일 필요는 없다. 정확한 판단력과 선량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되는 것은 기술적인 전문가가 되는 그 이상의 일이다. 의학은 인생의 은유(隱喩)다. 환자와 치료자(의사) 사이에 이상적인 관계의 기본은 균형이다. 기술적인 능력 이상의 것 즉, 관계의 균형을 말한다. 의학에서 인간적인 면을 소홀히 하면 환자와 의사 모두가 실패를 하는 것이다. 의학에 있어서 진정한 인본주의는 과학과 예술의 합리적인 접목을 시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치료에 필요한 기술은 과학이며, 치유에 필요한 기술은 예술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