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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질병 진행에 대한 미래 예측 능력

[최상묵의 NON TROPPO]-<36>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몇 개의 과정이 있다.

질병을 진단해야하고 질병이 생긴 원인에 대한 규명을 해야하며 그 다음 치료에 임하게 되고 다음, 그 치료의 미래에 대한 예측(예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부분인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은 의사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일 뿐 아니라 질병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상태를 파악하고 예측함으로써 환자의 확실한 상태에 대해 의사가 알고 있음을 환자에게 인식시켜주고 믿음을 주어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치료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언제나 필요하다. 다리를 건널때는 다리를 건너면 다리와 이어진 길이 있을 것이며 그 길은 계속 이어져 있을 거란 예상이 선행되어야 하며, 일주일 후면 방학이 시작될 것이며, 늘상 다니는 가게는 내일도 문을 열 것이라는 예측을 하면서 우리들은 살아간다.

 

우리의 일상은 미래에 대한 예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예상에는 항상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것에 대해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예측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안다는 것()’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날 미래의 일을 예상한다는 뜻도 된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능력도 커질 것이다  

지식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얻은 것을 미래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에 일어날 어떤 상황은 언제나 독특한 것이므로 반드시 현재와 과거의 사례를 통해 얻은 일반적인 지식이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따라서 예상은 빗나갈 가능성이 있고 불확실한 경우도 많아진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미리 아는 것도 지식의 일부이며 불확실성을 다소 인정하면서 어떤일을 예측하고 선택하여 행동을 하기도 한다.

 

어떤 일을 결정하고 행동해야하는 바탕이 되는 아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불확실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불안해 지게 마련이다.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의료행위나 건강의 문제에는 부확실성이 용납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의료현장엔 불확실성이 가득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선생님 알아서 해주세요. 선생님만 믿어요.”

치료에 대한 불안이나 예측을 의사들을 향한 신뢰로 보상받으려 하는 것이 일반적인 환자들의 태도이다. 의사도 사람인 이상 실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그러나 어떠한 상황도 의사의 실수를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의사는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삶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 환자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질병을 앓는 방식은 같은 질병에서도 사람에서도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 질병에 대한 미래에 대한 예측의 능력도 달라질 수 있다.

치아가 아플때 치료의 공포심 때문에 치과병원 가기를 포기할 수도 있고, 약을 먹으면 낫지 않을까 하는 예측으로 진통제를 먹고 그 상황을 수습하려고도 할 것이다. 즉 미래에 대한 환자 나름대로의 예측은 지금 겪고 있는 질병의 과정을 변형시킬 수도 있고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결과마저도 변화시킬 수 있다  

현대의학은 질병에 대한 분자차원의 과학적 지식을 통해 질병의 진행을 예측할 수 있다고 신념에 찬 자만에 빠져 있다. 물론 특정 질병에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분자 생물학적 정보가 질병의 발현과정을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질병에 대한 분자차원의 지식만으로 질병의 본태에 대한 예측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마치 물이 두 분자의 수소와 한 분자의 산소로 이루어진 것을 안다고 해서 물의 실체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촉촉한 물의 실체를.

의사들이 질병에 대한 좋은 예측을 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과학적 의학 지식이 맥락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질병의 예측은 그 질병의 특성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의사만이 가지는 특이한 감각적 판단이라는 기능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일종의 영감 같은 것 일수도 있다. 질병의 생물학을 이해하는 것은 합리적 의학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지식만으로 임상의학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질병으로 인해 앓고 있는 사람을 의사들은 반복적으로 관찰하고 또 관찰해야 한다. 과학적 의학에서 주장하는 비인간적인 지식을 인간화하는 관찰을 뜻함이다. 의사들이 이러한 배움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때 비로소 최고의 임상의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겪는데 수십년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데 안타까움이 있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