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일)

  • 맑음동두천 23.9℃
  • 맑음강릉 21.9℃
  • 맑음서울 24.2℃
  • 맑음대전 24.9℃
  • 맑음대구 26.2℃
  • 맑음울산 27.0℃
  • 맑음광주 25.6℃
  • 맑음부산 27.3℃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2.1℃
  • 맑음강화 22.9℃
  • 맑음보은 23.7℃
  • 맑음금산 23.8℃
  • 맑음강진군 25.5℃
  • 맑음경주시 28.0℃
  • 맑음거제 26.0℃
기상청 제공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상갓집 밥상에 대하여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11>

 

저는 결혼식이나 돌잔치 뷔페 그리고 상갓집 문상을 가서는 웬만큼 배고프지 않고는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간혹 멀리까지 인사를 갔다면 차라리 인근의 맛집을 찾아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개 잔칫집 뷔페에 가면 윗저고리에 형형색색 스티커를 붙여줍니다. 손님 머릿수를 세기 위한 방법일 텐데 영 마뜩찮습니다. 사람에 대한 값어치가 단순히 스티커 하나로 평가되는 기분이 드니까요.

문제는 상갓집입니다. 상갓집에서 밥이나 국 그리고 반찬은 일인당 얼마씩 책정된 것이 아니라 밥 한 솥, 국 한 양동이 단위로 계산을 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서빙을 담당하는 상조회 직원의 요령에 따라 비용이 많이 나가기도 하고, 절약이 되기도 하고 하는 시스템입니다. 제 경우에서도 과일이나 음료 등이 밤마다 상당한 양이 사라진 경우가 있었는데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예전에는 머리고기나 홍어, 가오리무침 등 때문에 단체 식중독도 생기곤 했는데, 요즘은 전문업체에서 제대로 만들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많이 줄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라는 삼성병원, 아산중앙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할 것 없이 전국 대부분의 전문 장례식장 음식 내용은 거의 비슷하고 또 서빙 방식, 운영방식들도 죄다 '도긴개긴'입니다.

아무리 고관대작, 그룹회장이 조문을 오더라도 1회용 밥그릇에 1회용 국그릇입니다. 비닐 깔개는 기본이고 수저도 플라스틱이어서 힘들게 찾아주신 문상객들에게 참으로 면구스러운 일입니다. 적어도 국그릇과 밥그릇만큼은 제대로 된 그릇에 담아줘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전통 '접빈객'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에서 설거지를 담당하는 한 사람의 인건비만 더 들여도 제대로 된 용기에 식사를 대접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세상이 발전한다는 것은 모든 게 편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특별히 땀 흘리고 애를 쓰지 않는 한, 사람들은 가급적 덜 움직이고 덜 생각하려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죠. 그러나 세상에는 일부러 수고로워야 할 일도 있습니다. 어르신들께 전화보다는 직접 인사드리러 간다는 것, 제사를 지내기 위해 먼 곳에 떨어져 사는 형제들이 함께 모인다는 것, 백화점에 전화 한 통으로 명절 선물을 보내는 것 보다는 선물을 사서 직접 전해드리는 것.... 이런 행동들은 일부러라도 품을 들여야 빛이 나는 일들입니다. 요즘은 청첩장이나 부고에 아예 계좌번호가 찍혀있는 경우도 간혹 봅니다. 서로 간의 편의를 위해서 그러했겠지만, 부조금을 보내는 이나 받는 이나 겸연쩍습니다.

25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남들처럼 집에서 장례를 지냈습니다. 그 때는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일도 흉한 일이라 하여 일부러 앰부백(수동식 인공호흡기)을 잡고 집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았지요. 요즘처럼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니 부고도 전화나 전보로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공무원 조직이나 회사 조직의 상조는 일사불란 합니다. 호상을 정하면 마당에 차일을 치고, 골목 골목에 상가가 생겼다는 등을 켜고 또 벽보 같은 것을 붙였습니다. 지관이 하관 시간을 정해주면 장지 준비는 따로 고향에서 합니다. 시골 동네 분들은 꽃상여를 준비해뒀다가 운구차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죠.

문제는 손님 접대입니다. 단체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자정이건 새벽이건 불시에 혼자 오시는 분들이 허다했습니다. 그래도 전부 일인 상을 차려서 내드려야 했습니다. 덕분에 여자들만 죽어났습니다. 한 여름에 검은 상복에 두건을 쓰고 문상객을 맞는 상주들보다, 부엌에서 일일이 상을 차려내야 하는 여자들이 훨씬 고역이었지요.

 

이제 여자들이 담당했던 힘든 일을 상조회사 아주머니들이 다 해줍니다. 그릇도 일회용만 사용하고 비닐깔개를 쓰니 설거지나 행주질도 필요 없습니다. 여자들이 편해지니 덩달아 남자들의 마음이 가볍습니다. 대사를 치르고 나서 여자들로부터의 푸념에서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하여도 '접빈객'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되겠습니까? 적어도 밥그릇, 국그릇만이라도 제대로 대접해야 하는 건 아닌지요.

 

 

얼마 전, 친구 부친상에 조문을 가서 음식을 먹다가 급히 찍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냥 민무늬가 아니라 꽃무늬비닐 깔개입니다.

 

 

밥알마저 당나라 군대처럼 제각각 따로 놀고, 국도 정체불명입니다.

제대로 된 그릇에 담아 나왔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