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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매워도 다시 한 번! '망향비빔국수'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10>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따로 '비빔 유전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골동반과 골동면이라 불리는 비빔밥과 비빔국수를 비롯하여, 어떠한 요리(혹은 반찬)라도 국물(소스)만 남아 있다면 일단 '챔기름' 혹은 달달하면서도 매운 각종 양념을 더하여 비벼줘야 직성이 풀리니 말입니다. 물론 남긴 국물이 아까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십여 년 전 홍콩 여행 중에 변두리 선창가 식당에서의 일입니다. 깐풍기 비슷한 맛이 나는 해물 요리를 먹고 남은 소스가 있어 일행들은 이구동성으로 폴폴 날리는 안남미 밥을 주문했습니다. 실제 비빔밥이나 볶음밥으로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이 주로 먹는 자포니카 계열보다 밥알이 따로 노는 인디카 계열 쌀을 써야 제 맛입니다. 주문한 밥이 나오자, 여행용 고추장을 넣고는 사정없이 비볐더니 식당 사장 이하 주방 식구들이 모두 나와서 신기한 듯 쳐다보더군요. 드셔보시라고 한 수저 떠줬더니 너무 맛있다며 난리도 아니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빔 소스나 기타 매운 요리(떡볶이 혹은 매운 찜갈비 등)의 소스를 만들 때 누가 누가 더 맵게 만드나 경쟁을 할 정도로 뭔가를 첨가합니다. 청양고추는 기본이고 전 세계에서 좀 맵다고 소문난 고추는 죄다 동원을 한다지요? 혹 화공약품으로 만든 유사 캡사이신 액기스를 사용하지 않았나 의심을 할 정도이고, 어떤 떡볶이 소스는 건강을 해칠 정도의 유독물질이 아닐까 의심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연신 흘리며, 입안과 혀 그리고 위장이 헐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매운 것은 먹어대는 분들의 심리는 대체 무엇인지 요령부득입니다. 마치 슬픈 영화를 보고 한바탕 울고 나면 묘한 배설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견딜만한 정도의 자학을 통한 쾌감일까요?

항간에는 매운 것을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비교적 정확하지 않은 의학정보가 돌긴 하지만, 한 여름에 매운 것을 먹고 땀을 뻘뻘 흘리면 어느 정도 시원한 피서가 되기는 하지요. 그런 시원함의 원리야 간단한 기화열 때문이지만...

 

망향비빔국수는 연천의 궁평리에 본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군생활을 보냈고 지금은 병원도 그 근처에서 하고 있는 친구에 따르면 처음엔 수색중대 면회소 앞에 식탁 두 개만 달랑 놓고 영업을 시작했다는군요.

하지만 지금은 전국에 체인점이 있고, 형제가 하는 유사 상호의 체인까지 생겼으니 사람 팔자 아니 비빔국숫집 팔자는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거나 외국여행을 다녀오면 아무래도 속이 메슥거리거나 입이 깔깔해집니다. 그럴 때 저는 집 앞에 생긴 망향비빔국수 분점에 슬며시 찾아가곤 합니다. 본점의 그 맛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그런대로 속도 풀리고 여행의 피로를 씻을 수 가 있습디다.

 

이곳의 비빔국수도 나름 엄청나게 맵지만, '멸치다시'로 만든 육수를 연신 들이키며 눈물까지 주룩 흘리면서도 끝까지 그릇을 다 비우고 마는 걸 보니, 제게도 매운맛을 즐기려는 한민족 DNA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집 근처에 생긴 망향비빔국수집입니다.

 

   국수가 나왔습니다. 벌써 입안에 침이 한가득입니다.

 

    첫번째 VIP가 시어머니와 갈등이 없는 분이라니.... 남자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명언이군요.

 

   짜고 시큼한 백김치가 유일한 반찬입니다.

 

   아무리 매워도 남김없이 싹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