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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한식과 와인의 결혼 - 동숭동 '담아'에서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9>

한식과 와인의 궁합을 맞추려는 시도는 와인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래 끊임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궁합 맞추기를 통상 '마리아쥬'라고 부르는데, 이는 곧 남녀의 결혼과 그 의미와 같기 때문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식과 와인의 어울림에 대해 딱 부러진 결론이 없다는 것은 마치 동성애자끼리의 결혼처럼 영원히 2세를 잉태할 수 없는 그런 안타까운 스토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버트 파커나 젠시스 로빈슨 같은 유명 와인 평론가들이나 유럽의 와인메이커들은 우리나라에 와인붐을 일으키고 또 와인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어떤 포도 종류로 만든 와인이 한식과 무척 어울린다고 강변을 하고 다니지만, 적어도 제 결론은 이런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식의 특징은 일단 짜고 맵습니다. 마늘은 그래도 익힌 뒤에는 그 성질이 부드러워지지만, 고추류를 포함한 오신채들은 익힌다 한들 본래의 성질이 그대로이죠. 음식에 과도히 집어 넣는 소금은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혀를 마비시키는 음식첨가물들은 와인의 맛을 즐기는데 절대적인 장애물입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론 지역 와인이 비교적 어울린다는 둥, 시라즈 품종이 좋다는 둥 하는 것은 '견강부회'일 따름입니다.

다만, 사찰음식처럼 간이 강하지 않은 음식이라면 어느 정도 와인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지요.

솔직히 기름기가 많은 중식은 레드 와인과 제법 잘 어울리고, 일식도 어느 정도는 마리아쥬가 좋은 편입니다.

그러나 한식은 뭐니뭐니 해도 우리나라 전통주와 어울려야 궁합이 맞습니다. 결국 '신토불이'가 정답이라는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가양주나 소주가 최고이고, 그 다음이 막걸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식당 입장에서는 밥값 못지않게 술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속칭 '간조는 술로 올리는 것'이죠. 게다가 술은 음식 장만과는 다르게 인건비나 정성 같은 품이 크게 들지 않지요. 오로지 좋은 잔만 준비하면 만사휴의입니다.

 

당연히 식당 입장에서는 와인처럼 마진이 큰 주류를 내어야 좋은 것이고, 따라서 레스토랑 관계자들은 '시지프스의 천형'처럼 끊임없이 '한식과 와인'의 마리아쥬에 도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강북에서도 북쪽에 거주하시는 분들께 죄송한 표현이지만, 식도락가 입장에서 '맛집의 북방한계선'은 대학로와 혜화동, 성북동까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고 강북구나 노원구에 맛집이 없을까만, 그 지역에 사는 사람 이외에는 거리 관계상 즐겨찾기가 어려운 점이 많아서죠.

예전 대학로 주변에는 나름 전통도 있고 품위가 있는 식당들이 꽤 있었지만, 요즘은 젊은 친구들 취향의 음식점들만 가득합니다.

 

하여, 문화관련 인사들이나 대학병원 교수님들이 그만 갈 곳을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지인들의 소개로 겨우 한 곳을 찾았는데, '담아'라는 아취있는 이름의 식당입니다.

동숭동 마로니에 골목을 지나 낙산 올라가기 전의 주택가에 있어, 나름 대학로의 소란스러움을 가까스로 피한 곳이군요.

일종의 퓨전 한정식집이랄 수가 있는데, 모든 음식을 천연조미료로 양념하여 건강에도 좋다니 그리 믿어야지요! 그 때문인지 음식들의 간이 강하지 않고 오히려 슴슴한 편입니다.

 

결국 이 정도의 한식과 와인의 매칭이라면 적어도 '미친 결혼'은 아니고, 억지 '중매결혼' 정도는 된다고 해야 하나요?

 

 레스토랑은 비록 작지만, 나름 소담스럽고 아늑하게 꾸몄습니다

 

  테이블 셋팅 자체는 한식과 양식의 짬뽕입니다.

 게다가 와인잔이 좀 그렇습니다. 솔직히 비싼 와인은 좋은 와인잔에 마셔야 폼이 납니다.

 궁합 맞추는 신혼 첫날밤을 모텔에서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역시 와인엔 붉은 고기가 최고지요

 

  백점만점에 구십구점짜리 수육입니다

 

        비빔밥도 좋습디다.

 

90'97' 무똥 로칠드는 우리나라에서 좀 흔한 편입니다. 왜 그럴까요?

 

로버트 파커 점수가 낮아 돈많은 외국인들과 일본사람들이 외면을 했으니, 그 나머지 재고가 우리나라로 대량 들어왔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실 예전에 엔화가 800원 내외일 때 뻔질나게 동경에 갔었습니다. 엔저시대에 저처럼 먹고 마신 사람도 있지만 엔화대출 받았다가 혼이 난 사람도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동경에 도착하자마자 '야마야'라는 저렴한 와인샵에 들러 대략 15만원 내외에 무똥 97'을 샀죠. 그렇게 마신 무똥 로칠드가 거짓말 좀 보태서 97'만 한두 박스는 족히 되지 않을까 싶네요.

무똥은 매년 레이블의 그림을 그 시대 최고의 화가에게 부탁합니다. 그림의 댓가는 달랑 와인 12병 한 상자라지만, 실제 원 그림값은 따로 주고 레이블에 사용한 비용만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서구 유럽의 잘나가는 화가들은 죄다 한번씩 레이블에 이름을 올렸는데, 피카소는 1973년 작고한 그 해에 그림이 올라갔습니다. 공교롭게도 1973년에 무똥은 2등급에서 1등급이 되었다지요?

일본 화가는 두 번인가 세 번인가 그림을 올렸고, 최근에 중국화가도 그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아직 없습니다만, 마셔대는 양으로 봐서는 조만간 올라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마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다리는 것처럼 와인애호가들에겐 또 다른 흥미거리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어느 화백의 그림이 선택될 지도 말입니다.

(90' 레이블을 그린 화가는 프란시스 베이컨이고 97'은 제가 잘 모르는 프랑스 화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