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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나의 커피 이야기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8>

1.

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는 채 이십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방 레지언니가 타주는 커피나 자판기 커피 애호가였고, 가끔은 블랙커피가 몸에 좋다며 인스턴트 커피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곤 했었지요.

그러나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서점에서 커피에 관한 간단한 책을 몇 권사서 읽고서는, '그까이꺼~!' 커피가 뭐 대단하냐는 생각과 '에스프레소'가 아니면 커피도 아니라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 잡히기도 했었습니다. '로부스타'종 커피는 개도 안 마시 거고, 아메리칸 스타일은 미국의 트럭 운전수들이나 마시는 거고, 일본 애들은 쓰잘 데 없이 이상한 기구나 필터 용지를 써서 커피를 뽑아 먹는게 마치 포르노에 등장하는 해괴망측한 짓과 다름없다고 여겼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영화 '카모메 식당''버킷리스트'에서 '커피 루왁'이 언급되고, 일본만화 '카페 드림'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저는 지금껏 드립식 커피를 제대로 마셔보지도 않았으면서, '포도는 실거야'하고 지레 포기한 여우였던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동경에 갈 때 마다 인스턴트 드립 커피를 구해와서 마시긴 했지만, 커피를 뽑아내는 지난한 과정이 생략된 커피란 '밀당'이 핵심인 연애 과정이 생략된 유흥업소 여인과의 원나잇 스탠딩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여하튼 강릉 '보헤미안'의 박이추 선생이 커피콩 볶는 과정을 옆에서 바라보며, 마치 제사장이 엄숙한 제의를 치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음도 커피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 한 원인이었음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치과에 있는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입니다. 업소용보다 커피를 추출하는 기압만 조금 낮을 뿐 커피를 즐기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 방에 따로 둔 네스프레소 머신입니다. 진공포장된 캡슐을 넣어서 커피를 빼내는 방식입니다.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 드립식 커피입니다. 커피 잔 위에 봉지를 뜯어 걸친 뒤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됩니다.

 

 일단 입문용 드립식 커피 도구들을 최대한 싸구려로 구입했습니다. 진득하지 못한 제가 언제 귀찮아질지 모르므로 절대 고급으로 사질 않죠.

 

처음으로 뽑아 본 드립식 커피입니다. 구아테말라 빈인데 제법 향이 좋네요.

 

직접 드립한 커피를 마실 때는 바하의 '커피 칸타타'를 듣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막걸리 두어 사발 마시고 부르는 듯 한 '게이코 리'의 허스키한 재즈가 제 격입니다.

 

 

2.

혹시 '가베무사'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가께무사'를 원용한 용어인데, 커피기구를 둘러메고 천하를 주유하면서 고수에게 배우기도 하고 또 일합을 겨루기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저도 그만 혹했지 뭡니까? 물론 저는 마시는 것만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동경의 커피집 두 곳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한 곳은 긴자에서 65년이 넘은 커피집이고, 한 곳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단골로 들러 오로지 No.3(메뉴판 순서표 상) 커피를 주문한다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정 ,저런 일정을 소화하느라 오모테산도에 있다는 하루키 커피집은 아무래도 '무리데쓰'입니다. (일본도 우리처럼 힘들다는 뜻의 '무리'의 발음이 같더군요.) 일본 사람들은 뭔가 하나에 빠지면 집요하다고 할까요, 아님 철저하다고 할까요...여하튼 끝장을 보고야 맙니다.

 

커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의 커피가 에스프레소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변주라면, 일본은 필터링 혹은 드립식 커피의 본향입니다. 미국식은 원래 이도 저도 아닌 엉터리 야매 커피이고요. 물론 스타벅스 같은 경우는 유럽식 모델을 도입한 것이라고 봐야죠.

일본의 경제가 한창일 때, 하와이를 비롯하여 남미나 중미의 좋은 커피농장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여, 지금 세계 최고의 커피농장들은 대개 일본사람 소유가 많다네요. '블루마운틴'의 경우도 일본 백화점의 지하 식품코너에서 사는 것이 가장 품질이 좋다고들 합니다. (다른 나라의 블루마운틴 커피들은 적정 해발에 위치한 농장이 아니고 그냥 블루마운틴 언저리 농장이라나 뭐라나...)

 

몇 해 전에 일본 만화인 '카페 드림'을 보고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이 친구들 참 무서운 민족들이구나 하고요. 혹 시간이 있으시다면 이 만화를 꼭 한 번 보세요. 커피에 관한 기초 지식을 넉넉히 쌓을 수가 있으니까요.

긴자의 노포 커피집은 책 '고치소사마, 잘 먹었습니다'-김혜경 저-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곳은 전후 일본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달래주던 커피의 고향이요, 커피역사 박물관이라고나 할까요? 그 커피집은 긴자 뒷골목에 음침한 조명 아래 있습니다. 입구도 초라하여 잘못하면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늦은 오후에 갔더니 아흔이 훌쩍 넘으신 주인장은 커피를 볶고 일찌감치 퇴근을 했다는군요. 이 커피 장인은 아직 총각(?)인데, 커피와 결혼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가게는 조카가 이어서 보고 있더군요. 좁은 주방 안에는 서너 사람이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커피를 드립하고 있는데 그 또한 장관입니다.

드립도 페이퍼 드립이 아니고, 천 드립인데 이걸 ''이라고 하더군요. 통상 우리는 뜨거운 물을 부을 때 주전자를 돌리며 골고루 뿌리지만, 이곳은 커피를 담은 뜰채()를 같이 돌리면서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꼭 목이 긴 주전자가 필요한 듯이 말하지만 이곳은 일반 포트의 주둥이를 플라이어로 우그려서 만들었더군요.

, 동경에 가시거든 게다가 긴자 언저리에서 노시거든 '라이언 비루'에서 맥주만 마시지 마시고 꼭 이 커피집을 들르십시요.

그 옛날 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이 명동의 다방에 앉아 담배연기 자욱한 가운데 커피를 마시며 문학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던 그런 분위기가 아직 이곳엔 살아 있습니다.

 

불어로 ambre는 영어 amber 입니다. 그러니까 호박 혹은 호박색인 거죠. 커피 위의 노란 거품인 크레마도 ambre일 수도 있지만, 여기는 드립식이라 크레마가 생기지 않습니다.

 

입구 우측에 유리칸막이 안에 있는 쌍팔년도식 커피볶는 기계입니다. 아흔살 세키구치옹의 전용공간입니다.

 

좁은 주방에 네 사람이 드립을 합니다. 머리 짧은 친구가 할아버지의 조카랍니다.

 

재떨이도 무게가 꽤 나갑니다. 일본은 아직 실내 흡연에 관대한 편이죠.

커피잔은 '드미 따세' 잔인데, 노친네가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대략 커피값은 만원 내외라고 보면 됩니다.

 

 커피집이 생길 때부터 있었다는 냉장고입니다. 그렇다면 몇년이나 된 거죠?

 

커피 그라인더 형상을 한 등입니다.

 

'고치소사마, 잘 먹었습니다'라는 책의 사진을 제가 앉았던 곳에서 찍었군요.

 

우측의 노신사가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또 커피를 우아하게 마시며 생각에 잠겨있습니다. 우리끼리 저 양반은 아마도 출판사 사장이거나 소설가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만....

책의 사진에도 노신사들이 보이는데 저 자리가 아마 그런 단골들이 앉는 곳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