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순례기

2016.12.13 14:19:11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86>

특정 음식이나 식당을 소개하는 언론사 기자들이나 각종 포털 등에 글을 올리는 식도락 블로거의 활동 영역은 대개 서울이나 기껏해야 수도권에 국한된 경우가 많습니다. 말로는 지방화 시대라 부르짖지만, 정작 입속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는 아직도 중앙에 머물러 있음은 슬픈 일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요즘은 울릉도만 제외한다면 아무리 먼 제주도나 남해안 일대도 당일 먹거리 여행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시도해 보지도 않고 지레 여러 사정을 들어 포기를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작고한 정주영 회장이 입에 담고 살았다는 "임자~! 하기는 해봤어?"라는 충고를 해주고 싶은 심정 뿐입니다.

30년은 족히 넘었을 듯한데, 여행지를 정하고 그 다음에 주변의 맛있는 집을 찾아보는 것이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저는 맛집을 먼저 정하고 부른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주변 경승지를 돌아보았습니다. 후에 알았지만, 오로지 그 식당에 가보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라는 ‘미쉐린 쓰리스타’ 레스토랑의 기준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하루에 네다섯 끼니를 소화해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만 다를 뿐이었지요.

이런 여행을 하다보면 불로소득도 만만치 않습니다. 막히지 않는 샛길이나 드라이빙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멋진 도로들을 알게 되는 것이죠.


몇 년 전까지는 매년 설날을 전후하여, 한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태백산맥을 넘습니다. 바로 생태맑은탕을 비롯하여 명태와 관련된 여러 먹거리들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경험하는 퍽퍽한 생태에 질려, 포슬포슬한 살과 넉넉한 곤과 애를 찾아 1년에 한번은 꼭 거진항을 찾아 가는 것이죠.

물론 근해에서 잡히는 명태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이지만 그래도 가장 신선한 생태를 맛볼 수 있고, 심심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오리지널 강원도 탕국물을 맛보는 희열을 그 누가 알까요? 동해안 명태는 씨가 말랐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겹쳐 이제는 원양 생태뿐이지만, 최근 국내에서 인공 양식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슬슬 강원도 나들이를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흔히들 명태를 '1魚 4色 4味'라 말합니다. 그 만큼 명태는 다양하게 조리되고 변주됩니다. 저희가 어렸을 때는 꽁치, 고등어와 더불어 가장 흔하고 값싸게 취급받던 어종이었으나 지금은 대접 자체가 다릅니다. 동해안에서 낚시나 그물에 어쩌다 잡혔다면 얼마 전까지는 육지에 닿기도 전에 어부들이 먹어버렸으나, 근자에는 명태 양식에 집중하는 수산연구소에 마리 당 수십만 원 씩에 넘길 정도로 귀물(貴物) 즉, 금태(金太)가 되었습니다.


필자의 '명태 찾아 삼만 리'는 영동고속도로의 속사 톨 게이트부터 시작합니다.

구름도 울고 넘는다는 운두령을 넘어, 호젓하고 설경이 눈부신 구룡령을 지나는 55번 국도를 만나면 이 길은 곧 양양과 연결이 됩니다. 물론 강릉까지 영동고속도로를 탄 뒤에 밋밋하기 그지없는 7번 새 국도를 타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한 길이지만, 이는 교과서적으로 착하게만 살아온 사람이나 선택하는 길이지요.

아침을 거르고 출발했다면 양양을 지나 속초 아바이 마을을 먼저 찾습니다. 그곳엔 여러 먹거리가 있지만 저는 오로지 명태회냉면 때문에 그곳을 찾습니다. 시골 막걸리 한 주전자와 오징어순대도 제법 어울리는 조합이긴 하지요. 집에서 따로 먹을 요량으로, 인근에 있는 할머니가게에서 명태 순대와 가자미 식해 그리고 명란젓, 창난젓을 사는 것은 옵션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포만감을 느낀다면 진정한 식도락가가 아닙니다. 30분 정도 북쪽으로 향하면 한 때 명태잡이의 전초기지였던 거진항이 나옵니다. 식도락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성진식당에 들러 생태맑은탕을 주문하고, 이 집 특유의 아가미젓갈이 들어간 깍두기 맛을 봅니다.

진부령은 미시령이나 한계령에 비하여 그리 험한 고갯길이 아닙니다. 산을 다시 넘어 용대리에 들어서면 독특한 외관의 용바위식당이 저희를 맞습니다. 용대리 황태국과 황태구이가 저희들의 마지막 명태 순례지입니다.

물론 귀가 길에 홍천의 양짓말 화로숯불구이나 횡성의 한우구이를 그냥 지나친다면 식도락가로서 뱃골이 작은 편이겠지요.


    명 태
                                   양명문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푸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 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속초 아바이마을의 명태식해 냉면입니다.


예전엔 아바이 마을 곳곳에 명태를 이렇게 말려두었는데 요즘은 보기가 힘듭니다.


명태 순대입니다. 이제는 멸종희귀 음식이 되었어요.


가진항 성진식당입니다.고성8미를 맛볼 수 있다는군요. 그런데 고성8미가 대체 뭘까요?
생태, 도치, 곰치, 장치....?


명불허전 생태찌개입니다.



용바위식당에서 파는 황태들입니다.



이 안주에는 강원도 옥수수막걸리나 조껍데기 막걸리가 필수입니다.



집에서는 도저히 저런 진한 국물이 나오질 않습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















 

 



석창인 ok@dent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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