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6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태어나 배우이자 감독으로, 환경운동가이자 인디 영화의 수호자로 89년의 삶을 살다 지난 16일 영면에 든 것입니다. 하지만 스크린 속에서의 그는 여전히 빛납니다.
젊은 날의 레드포드로는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단순히 총을 든 반항아가 아니라 낡은 질서를 벗어나 자유를 좇던 시대의 상징이었습니다. 불안과 갈망을 동시에 품은 그의 눈빛은 그 시절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휘저어 놓았습니다.
이후 ‘스팅’에서 그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폴 뉴먼과의 세기의 콤비 플레이에서 레드포드는 젊고 날렵한 사기꾼을 연기했지만, 거기엔 단순한 속임수 이상의 매력이 숨어 있습니다. 반전의 묘미로 가득한 이야기 속 그의 연기엔 동료를 향한 믿음과 삶을 버티게 하는 우정의 힘이 배어 있었고, 고비 때마다 도무지 연기같지 않은 맑은 웃음 하나로 관객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직접 감독을 맡은 ‘흐르는 강물처럼’은 레드포드가 남긴 가장 서정적인 영화입니다. 목사의 집안에서 성장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과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사랑과 상실, 화해와 이해를 담담히 보여줍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그의 카메라에는 과장도, 미화도 없었고, 영화는 그저 강물처럼 조용히 그리고 깊이 관객들의 내면에 스며들 뿐이었습니다.
말년의 레드포드는 화려한 무대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습니다. 2018년작인 ‘The Old Man & the Gun’을 마지막으로 그는 스크린보다는 자연과 예술, 그리고 가족과의 시간 속에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올 초 TV 시리즈 ‘Dark Winds’에 짧은 카메오로 나와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지만, 그건 이미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은유 같은 장면이었죠.
이제 우리는 '내일을 향해 기꺼이 총을 겨누던 무모한 청춘'과 '반짝이는 웃음으로 인생을 연기하던 풋내기 사기꾼' 그리고 '흐르는 강물 위로 시간을 관조했던 한 인간의 목소리'를 스크린 속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끝난 뒤의 긴 여운 같은.., 그것이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의미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