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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나의 삶과 피아노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25>


 

   몇 달 전 대전예술의전당 후원회원 50여명은, 65년 만에 한동일씨 영구귀국과 한국 시민권 회복을 축하하는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1954년 당시에 줄리아드에 가는 피아노 신동 한동일의 뉴스는, 휴전 직후 각박한 우리 삶에 밝은 위안이었다.
 필자 두 살 위의 또래였기에 기억에 더 깊이 새겨졌으리라.  음악가는 연주로만 말한다는 통념이 무너지고 있다.  천진한 어린이의 말투로 난해한 클래식을 쉽게 풀어주는 ‘금난새 식 콘서트’의 인기가 오르고 있는 것이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에서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거쳐, 비록 하이라이트지만, 오페라(La Traviata))에 이르렀다.  근엄한(?) 백발의 금노상 지휘자보다 6세 맏이 형이면서도, 더 젊어 보이는 금난새의 미소 띤 동안(童顔)이 만들어낸 변화로, 클래식 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참신한 시도다.  지난 8월 18일 한동일씨의 ‘나의 삶과 피아노’ 공연도, 축복 속에 8순을 눈앞에 둔 천재 피아니스트로서, ‘감사와 추억의 말씀’을 가득 담은 감동의 ‘금난새 식’ 콘서트였다.

 

   제1부는 슈베르트 즉흥곡 1, 3번으로, 인생의 추수기를 맞은 노인의 감사기도다.
 공산치하에서 빈손으로 쫓겨난 흥남시절 회고담으로 시작한다.  두 살 때(1941년 생) 베버의 ‘사냥꾼의 합창’과 이탈리아 민요 ‘바다로 가자’의 멜로디를 흥얼거리자(피아노로 몇 마디 쳐 보인다), 합창단 지휘자이던 부친이 그 천재성을 알아보고 피아노 레슨을 시킨다.  월남 후 초등시절에 미 5공군 강당에서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본 앤더슨 사령관이 후원을 자청하여 유학길에 오른 일, 은사 로지나 레빈교수의 과분한 사랑 속에 최고 인기의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한 일, 케네디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에서의 연주, 한국인 최초의 레벤트리트 국제콩쿠르 우승(1965) 등, ‘대한 늬우스’를 닮은 흑백필름을 배경으로 감사로 충만했던 시절을 회고한다.
 즉흥곡 연주는 노스탤지어에 북받친 노인답게 5%쯤 느릿하고 조금 숨결이 거칠다.


 제2부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Kinderszenen).  클라라와의 사랑 속에 태어난 13 개의 시편(詩篇)과 성장기-전성기의 추억이 오버랩 된다.  모닥불에 구어 먹던 마시말로, 목마를 타던 카우보이 놀이, “웬 엄숙? 어린이는 나가 놀아야 해.”하시던 스승님 말씀.  호기심·행복한 환상·꿈·자장가·시인은 말한다. 등 주옥같은 소품을 빚어가며, 어린이의 눈을 찬양한다.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까지 70년이 걸렸다”던 어느 시인처럼*, 관조의 경지에 이른 달인의 티 없이 맑은 연주다.
 단순한 기억(recollection)도 프랑스식 추억(souvenir)도 아닌, 현자(賢者)가 된 노인의 눈으로 바라본 옛 시절 회고전(retrospective)이다.  종착역 제3부는 역시 쇼팽이다.
 먼저 훌륭했던 동료 선배들로 화두를 꺼낸다.  줄리아드에 몇 안 되던 한국유학생 중에 특히 배려해주던 오정주 선배, 귀국하여 서울대 재직 중, 하바드에 가는 아들과 함께 탔다가 소련의 미사일에 희생된 운명의 KAL기((1983).  그 제자의 제자인 국민대 김선아교수와 피아노 협주곡 제2번으로 시작한다.  두 대 중에 한동일의 피아노는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그러나 조용한 역동성으로 객석을 압도한다.  다시 찾은 한국시민권에 대한 감사, 일생에 가장 큰 축복이라는 제자 복(福)에 감사하며, 스토리가 있는 발라드로 연주를 마친다.  3인의 제자와 함께 2대의 피아노에 나눠 앉아 경쾌하게 연주한 앙코르곡 스메타나의 론도는 화룡점정이었다.  뇌 과학자들은 두 살 때 기억은 내 것이 아니라 뒤에 다시 조립된 ‘작품’이라고 한다.  기억중추 해마의 급속성장기에, 두 살 이전 기억은 삭제되니까.  천재의 부정이 아니다.
 기억의 소재를 피드백해준 가족과 지인의 사랑, 그 가운데 무르익는 충만한 감성과 이마에 그늘하나 없이 한길을 걸어온 호호야의 무구(好好爺·無垢)함.  그래서 ‘나만의’ 슈만을 또 쇼팽을 그려내는 대가(Virtuoso)가 탄생한 것은 아닐까?

 

* ‘어린이의 눈’은 고은 시인의 창작은 아니고, 어느 성현의 인용으로 기억한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