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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비몽사몽 4 : ‘이런 전쟁’과 팩트 체크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21>

 

 

   본과 3년 때 명동 서점에서 페렌바크의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을 샀다(1965).  깨알 같은 본문만 장장 720여 쪽을 닷새 만에 읽었을 만큼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최근 번역본이 나왔다기에 찾아내보니, 너무 낡아 다시 읽기는 포기했다. 
 첫째 궁금증은 처음 도착한 스미스 부대 4백여 명이 왜 사흘 만에 반 토막이 났을까?  이차대전 후 대폭 축소된 미 육군.  맥아더 사령부에는 사실상 전투 병력이 없었다.  타자수와 취사병 등으로 급조된 부대는 오합지졸(Ragtag Outfit).  “당신들 모습만 보아도, UN 결의에 따라 외국군이 왔다는 사실에, 양국의 전투행위는 끝날 것이다.”   즉 경찰행위(Police Action)일 뿐이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지시를 받고 중화기도 없이 파견되어, 이름만 거창한 스미스부대(Task Force Smith)였다. 
 둘째는 채병덕 참모총장의 행방이다.  예상 못한 기습에 무너진 책임을 지고 해임된 Fat Chae(유도선수 출신 육중한 체격 탓)는, 사실상 백의종군 중에 하동전투에서 전사한다.  한밤에 텐트 밖이 소란하자 무모하게 권총을 뽑아들고 뛰어나가, “누구야!”하고 외치는 순간 집중사격을 받아 쓰러졌다.  삼성장군으로서 어이없는 죽음. 
 셋째, 서울이 함락되자 ‘빛의 속도’로 내빼는 국군.  중공군과 부딪히자 혜산진에서 수원 남쪽까지 다시 한 번 빛의 속도로 줄행랑.  국군은 모두가 이처럼 무능하고 미군에게 전투력을 의심받았는가?  탱크가 없는 춘천에서 김종오 장군의 6사단은, 오히려 일시 반격으로 귀중한 사흘을 벌어주었다.  특히 7연대 임부택 대령이 용명을 날렸다(칼럼 양반정신, 1994).  개성지구 1사단 백선엽 대령과 강릉 이정일 대령의 8사단도, 막강한 화력의 대병력에 맞서 흔들림 없이 사흘을 막아냈다.

 

   당시 국군 사단장은 대령이 많았다.  창군의 역사도 현역 경력도 짧았던 탓이다.
 이제는 연대장 가용심사를 거쳐 대령진급, 고참 연대장이 장성이 되고, 별 두 개를 달아야 한다(예비사단은 준장).  뒤집어보면 6·25 당시에는 실전에서 연대병력을 지휘해본 경험자가 없었다는 뜻이니, 몇 명만 있었어도 결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인민군은 병력과 무기가 압도적일뿐더러, 마오가 내준 국공(國共)내전의 베테랑인 2개 사단이 있었다.  그나마 만주·일본 육사출신 하급 장교들이, 지휘관으로 고속 승진하여 버텨준 덕분에, UN 병력의 전개 시점 까지 부산교두보를 지켜낸 것이다.*

 

   ‘친일파 장사’로 평생 먹고사는 동네에서는, 이승만 폄훼 김일성 숭상 풍조가 주류로 보인다.  비몽사몽의 얼치기 지식으로 무장한 까닭에, 첫째 장교와 부 사관이 얼마나 소중한 전문직인지 개념이 없다.  이차대전 중 정치장교 흐루쇼프소장이 주코프원수 등 뒤에서 히쭉 웃는 사진이 있다.  전투를 망쳐도 무조건 당이 먼저다.
 둘째, 소위 독립군 토벌 ‘만주 특설대’ 신화다.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일본군에서 만주 주둔의 관동군은 등급 밖이요, 조선 출신의 병사들에게 천황을 위한 옥쇄는 무의미했다.  태평양전쟁에서 항복한 일본군 포로는 거의 다가 조선인이다.
 최전선을 조선인 지휘관에게 맡기기에는 불안하니, 조선 출신은 주로 후방 경비 내지는 예비 병력이었다.  구한말 매국노 대신들이 외형상으로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나라를 팔아먹은 까닭에, 일본과 같이 붉은 색 지도의 한 나라가 된 지 어언 30여년, 헌병오장이 즉결처분을 하는 계엄령보다도 더 살벌한 만주벌판에 독립군 병력이 과연 얼마나 남아 있었을까?  웨스트포인트와 미 참모대학 교재로 쓴다는 ‘최상의 야전지휘관’ 백선엽 장군까지 친일파로 끌어내린 소위 ‘광복회장’ 김원웅에게, 노장군은 독립군은 한 명도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당시 김일성마저 소련으로 도망가 있었다.  간도 특설대는 그저 이름이 특설대일 뿐이었다.

                                               

* 소대·중대를 맡은 초급장교는 지휘자요, 통상 대대장 이상이 지휘관이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