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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비몽사몽 2 : 늦깎이 엘리아 카잔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19>

 

 

   대영제국의 식민지 삼각무역은,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노예들이 서인도제도에서 사탕수수를 재배, 설탕은 인도 산 면화로 옷감을 짜는 아일랜드·웨일스인인 공장 노동자들에게 연료 주입하듯 먹이는 식의 흑 역사였다고 한다.  제품의 소비시장은 다시 식민지였으니, 상선은 항로마다 노다지요 산업혁명은 엄청난 부를 낳았으며, 이 사이클을 돌리는 두뇌·동력과 윤활유는 바로 거대자본이었다.  독일 경제학자 엥겔스는 아버지의 맨체스터 방적공장에서 일하면서, 권리도 없이 열악하게 사는 영국노동자의 삶을 목격하고, 이를 글로 발표한다(1845).  자신도 아버지에게 얹혀 살면서도 일생의 동지 마르크스를 먹여 살렸으니, 제 손으로 벌어먹지 못한 원조 ‘백수(白手) 운동권’이다.  부의 축적과 여유 즉 가치창출은 노동자의 공이며, 자본가는 이를 착취할 뿐이라는 것이 쉽게 푼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이라면, 이는 거대한 사이클은 보지 못하고 노동 현장만 살핀 피상적인 인식을 근거로, 하숙집에 틀어박혀 관념론적으로 상상한 ‘장님 코끼리 더듬기’식 결론이 아닐까?
  
   처칠은 음흉한 스탈린의 영토야욕과 세계 공산화 의도를 간파하고 이를 막으려하지만, 평생 지병으로 탈진한 루즈벨트는 관심이 없었고, 전쟁에 지친 영국민들은 쓸모를 다한 처칠을 선거로 퇴출시킨다.  동구 위성국과 중국이 공산화하고 베트남이 흔들리자, 뒤늦게 놀란 미국 사회전빈에 매카시즘의 광풍이 분다.  원폭기술 스파이 사건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유태계 시어도어 홀은 죽기(1999) 직전 저서를 통하여 평생 숨겨온 간첩행위를 고백하며, “미국의 핵무기독점을 막으러하였다.”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많이 듣던 배신자의 노래다.  1949년 소련 원폭실험이 성공하고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한지 꼭 1년, 대한민국은 미국의 방어선 밖이라는 애치슨 선언 5개월 만에, 중·소가 합작 지원한 김일성의 남침은, 미 국민을 배신감에 분노하고 애국심에 불타오르게 하였다.  1950년 초 매카시상원의원은 미 국무성에 공산주의자가 믾으니 진보성향 직원 100명을 추방하자고 주장한다.
 
   엘리아 카잔은 1999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은 받았으나, 만 90세의 이 원로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싸늘하였다.  매카시즘 광풍의 한 가운데 그는 하원 반미(反美) 활동 위원회에서, 자신이 과거 공산 당원이었음을 시인했는데, 문제는 동료 당원들의 이름을 불어버린 것이었다(1952).  그가 심기일전하여 만든 흑백영화 “On the Waterfront”는 아카데미 상 12개 부문 지명에 8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인기 없는 부두 노동현장의 비리 고발 시나리오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투자자 구하는 데에 오래 걸렸지만, 미 영화원에서 위대한 영화 8위에 랭크되고 미 의회 영화기록원에 영구보존이 결정된 명화 중의 명화다. ‘욕망... 전차’ ‘에덴의 동쪽’ 등 보석 같은 작품과, ‘메소드 연기’ 도입과  스타들의 산실 액터스 스튜디오 설립 등 숱한 공로에도, 동료들은 단 한 번의 배신을 용서하지 않았다.  필자는 카잔의 사회고발 작품에서, 체제와 팽팽한 긴장 김이라면 몰라도, 붉은 선동성은 본 적이 없다.   그는 공로상을 받은 지 4년 만에 사망하였다.  참여-계몽문학까지는 따뜻한 인간미가 흐르는 인도주의 시절이었다.  10월 혁명과 코민테른 이후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를 받드는 층견과 시녀들이 RAPF를 만들자, 일본에 NAPF 조선에 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가 뒤따른다.  카프는 1923년 결성, 일제의 민족문화말살 정책에 저항하다가 1935년 자진해산 했으므로, 이념문학의 피비린내가 조금 덜하다.
 해방 후 월북한 그들을 미국 스파이로 몰아 불과 3년 만에 모조리 숙청한 사실은, 대한민국에 숨어서 활동하는 종 북주의자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