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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시간이 멈춘 나라들 4 : 귀소본능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16>

 

   네 번째 작은 나라는 스위스·오스트리아 사이의 리히텐슈타인.  금년에 3백주년을 맞은 이 공국(Principality of Liechtenstein)은, 인구 38,000에 강화도 절반 크기지만, GDP는 세계 1위인 $17만.  금속가공과 우표판매가 주수입이라지만, 알짜배기는 조세피난처(Paper Company)다.  수집가의 성지답게 우표박물관이 뛰어난다.  1719년 신성로마제국 찰스 6세가 만들어, 4년 뒤 제국의회에 한 자리(一席) 준 것을 보면, 다분히 정치 냄새가 난다.  중세에서 근세까지 유럽의 마녀사냥·탄압·전쟁이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졌고, 전쟁원인이 황제와 교황의 세력다툼과 왕위계승이었음을 깨닫는다.  국방과 외교 통화는 스위스가 맡고, 독일어를 쓴다.  식당 Adler Vaduz의 중식(中食) 라지아니 요리는 그저 그렇다.  음식에 굳이 등수를 매긴다면 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스페인의 순서다.  스페인 음식은 소금밭이다.

 

   귀국 행 공항소재지는 상업중심지 취리히.  리마트 강가에서 자유 시간 겨우 두 시간.  2000년 역사의 니더도르프 골목상가와 세 성당을 둘러보았다.  본시 수녀원이었다가 성당으로 다시 교회로 탈바꿈한 Frau-Muenster.  원본이 이스라엘미술관인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는데 목회 중 출입금지다.  Gross-muenster는 크기에 비해 외관은 소박한데 경건한 목회를 잠간 훔쳐보니, 신도 수는 역시 많지 않았고, 조금 나은 Pedromuenster도 계속 보아 온 성당들에 비추어 눈에 차지 않는다.

   Coach-tour는 이동시간이 길어 당연히 버스가 안락해야 한다.  유럽의 차는 엔진은 한 회사에서 공급하고 지역별로 차체만 만드는데, 우리가 탄 Irizar 6i는 Scania제품으로 출고가가 6억5천만 원이란다.  대략 승차 2시간이면 허리가 아픈데, 그 장시간에도 아주 편했다.  준비해간 목 베개와 허리받침이 아주 요긴했다.  열흘 동안 기사가 두 번 바뀌는데, 모두 포르투갈 인이다.  노동의 급과 GDP의 상관관계인가?


  책에 안 나오는 시정의 뒷이야기가 더 재미있지만, 가이드는 어차피 복불복이다.  
 지독한 독감의 아크매 상태에서 출발하여, 상경 버스표를 두 번 사고 송수화기를 잃는 둥, “이제 치매가 오나?” 우울증을 겪었는데, 가이드가 “오도아케르”하면 “476년!”, “카놋사의 굴욕”하면 “하인리히 4세와 그레고리우스 7세!”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내 뇌가 아직은 쓸 만하구나.” 힐링이 되고, 맑은 공기 편한 마음에 독감도 물러갔으니, 이게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날마다 가방을 풀고 싸는 일은 짜증나지만, 버스에 편하게 앉아  보고 들은 것을 한 두 시간 음미하고 정리하는, 뇌운동의 재미도 쏠쏠하다.  베아트리체 추억이 서린 피렌체를 향한 단테의 수구초심(首丘初心)은 유명한 얘기지만, 망명 19년에 ‘신곡’을 완성하였으니,  이탈리아 국민에게는 축복이었다.  빅토르 유고가 19년 망명생활에 ‘노트르담’을 쓴 것도 공교롭다.  필자는 열흘도 못되어 귀소본능이 작동, 집 생각이 굴뚝이니, 대인이 되기는 글렀나 보다. 

  이탈리아라는 이름이 불과 2백년 안팎이듯, 로마제국 멸망 후 분열과 갈등이 너무 길었기에, 대략 16개 나라로 살아온 이탈리아의 지역감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나폴리말로 부르면 전혀 다른 노래 같다.  고향에서 태어나 세례를 받고 자녀가 또 세례 받고, 결혼 시켜 손자 손녀를 보고, 늙어서 고향에 묻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그들의 애향심이 강하고 그 동네에 “시간이 멈추고 평화가 충만한 이유”다.  세잔의 단골 모자가게와 그 시절 가로수도 그대로다.  멀쩡한 집을 부수어 아파트를 짓고, 서울로 강남으로 옮겨가고도 모자라 그 아파트마저 허물어 재개발 하니, 마음의 고향은  간 곳이 없다.
 울렁증과 조급증은 필시 바쁘고 고된 우리네 인생살이의 멀미현상인가보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