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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송년 음악회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92>

 



   Memento mori!  고고한 동양철학으로 무장하여 생사를 초월한 척해 봐도,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셔서 나이를 잊자는 망년(忘年)회야말로, 죽음의 공포 앞에 나약한 속내의 노출이 아닐까?  서양에서는 종무식처럼 그냥 종년(Year-end) 파티라 한다.
 다행히 요즘은 묵은해를 보내는(Bid the old year out) 송년회로 통일이 되고,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음악회를 찾는 인구도 늘었다.  필자가 빠뜨리지 않는 콘서트의 으뜸은 베토벤의 교향곡 #9 환희의 송가다.  130여명이 우렁차게 외치는 ‘인간 승리’의 심장 떨리는 합창은, 한 해 동안 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새로운 다짐에 가슴 부풀게 하는 인생응원가다.  다음, 가족동반이면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다.
 러시아 민요의 정수만을 뽑아낸 차이코프스키의 선율과 환상적인 율동에 이끌려 한바탕 꿈결에 잠겼다가 깨어나면, 아이들은 평생 간직할 아름다운 꿈을 적립하고, 어른들은 연말선물로 푸짐한 힐링을 챙긴다.  부부나 연인사이라면 다소 어둡지만 오페라 ‘라보엠(La Boheme)’이 좋다.  프랑스인들이 체코 중서부 주민들을 집시 같은 유랑민족으로 착각하여 붙인 이름이 보헤미아(Bohemia)이지만, 여기서 보엠은 전통이나 풍습을 벗어나 자유분방한 사람들, 특히 파리 라틴쿼터의 가난한 예술가들을 말한다.  불끼 없이 차가운 다락방에서 밭은기침을 하며 죽어가는 미미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인 로돌포...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입, 즉 배려와 연민의 불씨를 되살려주는, 예술로 위장한 푸치니의 작은 종교의식(儀式)을 경험한다.

 

   “거기 앉아라, 장동건 학생.” “선생님, 저는 유오성인데요?”  이리되면 상담(相談)은 초장에 날 샜다.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의 역사도 길지는 않지만,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갈라선 지가 26년인데, 대한민국 ‘외무부’ 공무원들만 그걸 몰랐단다.
 공부해야할 대학시절에 아스팔트 위에서 최루탄 마시며 보낸 아픔은 애처롭지만, 그 정도 무지로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 못쓴다.  내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과 장장 50년 국운이 걸린 상담(商談)을 할 상대가 있을까.  상품에나 믿음이 간다면 모를까, 안전하지도 싸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아 앞으로 제 집안에서도 안 쓰겠다는 물건을 팔아달라면, 그건 한번 ‘웃자는’ 농담 아닌가.  자고로 우리나라에서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는 사람을 빈집털이 또는 밤손님이라고 불렀다.  결례와 황당한 의제 선택과 회담 전 조율 부재 등...    똑똑한 인물이 기라성 같은 외교부에, 왜 이런 참사(參事 아닌 慘事)가 그치지를 않을까?  직장 분위기상 말을 꺼낼 수 없거나, “그래, 잘난 니들끼리 잘 해봐.”가 아니라면 말이다.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 카톨릭)나 ‘건설적 반대 상’(Constructive Dissent Awards; 미국 외교관협회) 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초딩 수준의 실수를 체크할 팀워크나 시스템도 없는가?

 

   교도소 수인을 만나려면 ‘면회’를 신청하고, 보통사람이 구청장을 뵙는 게 ‘면담’인데, 의전(儀典; Protocol)을 우선하는 국가 간 만남에서는 반드시 상대방의 격(格; Counterpart)을 따진다.  그래서 회담이냐 면담이냐 설왕설래도 창피하지만,  끝판왕은 또 있다.  기름 넣으려고(中間給油) 들렸다는 변명이다.  막말로 스쿠터도 아닌 전용기의 주유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이왕 간 길에 국립극장(Narodni Divadlo)에서 부부동반 오페라를 감상했으면 어땠을까?  시민들은 프라하가 세계적인 예술과 문화의 도시임을 긍지로 여긴다.  예술을 이해하고 체코 음악계를 높이 평가한다는 몸짓만으로도, 기왕에 엎질러진 외교적인 실수들을 상당부분 만회하지 않았을까?
 때마침 연말 콘서트 시즌이니, 오페라가 라보엠이었다면 금상첨화...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