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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얼라들은 가라 4 : 오만과 미륵불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85>

 

 

   미륵불이 오신다는 56억7천만 년은 숫자라기보다 종교적 은유다.  천년의 신라왕국이 쇠퇴하자, 핍박받던 고구려·백제 망국민들의 메시아 기대심리가 후삼국을 탄생시켰고, 그중에도 영리했던 궁예는 석가모니 가신지 불과 천오백 년에 스스로 미륵불의 현신임을 선언하였다.  신정(神政) 일치의 천년제국을 꿈꾸며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고 궁전에 쇠기둥을 썼건만, 불과 10여 년에 무너진다.  곧고 탐욕이 없으며 카리스마와 애민정신은 넘치는 한편, 인내심·친화력·융통성이 없어, 복속해온 신라인을 모두 죽였다.  오만이 하늘을 찔러 말년에는 스스로 불경을 쓰고, 관심법으로 마음속을 뚫어본다며 법봉(法棒)으로 신하를 때려죽이는 등 악행을 일삼다가, 부하 왕건을 받들고 일어선 부하들의 쿠데타로 쫓겨났다.  법도가 아니라 자의적인 적폐청산으로 일관하여 민심과 나라와 목숨 모두를 잃었다.  고공 행진하는 지지율을 업고 법치주의를 우회하려는 일부 ‘얼라’들에게, 자기성찰의 계기가 될 고사(古事)다.  고대 아테네에서 독재적 지배자인 참주(僭主)의 출현을 막기 위하여, 지지율이 너무 높아지면 도편추방제도(Ostracism)를 시행하지 않았던가?

 

  지정문화제 278호인 동숭동 옛 서울대 본부건물 남쪽에 문리대 강당이 있었다.
 본과 2학년 때 본 수업을 빼먹고 유기천 총장의 200분 형법강의를 도강한 추억이 서려있다.  한일회담으로 한참 시끄러울 때(6·3사태, 1964), 정치외교 과와 법대 등 1500여명 학생들 앞에, 38세 초선의원 JP가 홀로 섰다.  국제정세와 한일·한미관계, 그리고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행에 외자조달이 얼마나 절실한지 열변을 토했다.
 논리 정연한 강의에는 거침이 없고 답변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 후 대부분 학생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정부에 떳떳한 자세를 채찍질하고(굴욕외교 반대!), 한 푼이라도 유리한 협상을 위하여 뒷받침한다는 자세였다.  반대세력에 밀려나 자의반타의반 외유 중에도 직접 차를 몰아 아우토반을 달리며 경부고속도로를 구상하고, 서산에 비육우 목장 조성으로 지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제주도 감귤 밭 개발은 한 그루 잘 키워 자식 하나 대학 보내는 수익모델을 보여주었다.

 물론 반대파의 부정축재몰이로 다 몰수당했지만.  그 후 JP는 YS에 이어 DJ 집권에 메이커였다.  가정적으로는 대구 10월 폭동 주범으로 사형당한 박상희의 딸을 아내로 맞아 지순한 부부애를 보여주고, 쿠데타로 옹립한 처삼촌(박정희)에게 모진 수모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다.  “처삼촌 벌초하듯”이라는 말이 있고, 고모부를 고사포로 분해한 자를 존경한다는 세상 아닌가?  중국고사와 정치철학에 두루 밝고, 유머와 낭만에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까지 갖춘 불세출의 인재였다.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흔한 회고록보다 훨씬 의미 있는 기록이다.
 고건·박태준과 함께 ‘소이부답(笑而不答)’은 모두 갖고 있다(JP 증언록, 114회).
 평가를 하려면 알아야하고 알려면 읽어야 한다.  황교익씨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법치와 절차 존중이요, 거기에는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전진과 후퇴의 역사가 있었다.  이를 부인하면 그건 바이러스 감염으로 뇌가 성장을 멈춘 붉은 피터 팬, ‘영원한 얼라’다.  JP가 “총으로 권력을 찬탈”한 시점은 민주주의 진도, 즉 민도가 초등졸업 정도였다(전쟁 포함 독립 13년차).  물론 혼란했던 정치판과 남침위협과 훗날 산업화 성공이 쿠데타를 감쌀 수는 없지만.  “독재 권력의 2인자로서 호의호식” 에는 YS·DJ 당시 2인자도 포함되는가?  또한 맛 칼럼니스트가 ‘호식(好食)’을 범죄로 보는가?  세치 혀를 두 배로 우려먹고 사는 황 씨의 혀 놀림이 너무 헤프다.  지지율이 90%를 넘어도, 사람은 사람이요 미륵은 미륵이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