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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현대인의 쾌락 중독 현상

[최상묵의 NON TROPPO]-<59>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옛날보다 훨씬 잘 살게 되었는데 우울과 불안,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견디기 위해서 무엇인가에 탐닉하고 열망하며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해 다양한 중독(몰입) 대상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일중독, 도박중독, 인터넷 중독, 쇼핑 중독, 성중독 등이다. 
 사회는 개인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여 끊임없이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좋은 술을 계속 개발하고 식도락을 부추기고 어른용 장난감, 도박, 매음 그리고 약물남용 등이다. 건전한 행복을 얻지 못할 때 사람들은 이런 퇴행성 장치를 통해서 자기의 욕망을 분출하며 대리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현대인들의 삶속에 과상 자극(Hypernormal Stimulate) 현상을 너무 많이 접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흥분과 희열을 너무 쉽게 자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환상적인 화장법이나 성형술로 눈부시게 꾸며진 배우나 모델의 얼굴에서 또는 인공적으로 합성되어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퍼포먼스의 드럼이나 악기소리, 예쁘게, 우아하게 질서 정연하게 진열해 놓은 상품의 모양 등은 일상생활과는 다소 동떨어진 자극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특히 비디오 게임이 주는 통쾌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삶 자체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뇌 속에 잠재된 쾌락 탐지기에 존재하고 있는 본능을 일깨운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다양한 쾌락은 우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폭 넓게 조율된 쾌락세계의 산물이다. 인간은 인간을 취하게 만들고 웃게 만들고 흥분시키고 대상에게 돈을 지불한다. 우리들은 정보를 사랑하고 신체적 접촉과 사회적 접촉을 사랑하며, 좋은 음식, 훌륭한 술, 음악, 연극, 춤, 소설, 영화 등을 사랑 한다.
사람들은 어떤 가지를 중요시하는 관념적 상태와 쾌락을 중요시하는 감각적 상태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도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 않고 본능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도 위험한 것이다. 지금 시대에 맞는 감각은 도덕적 규범에만 묶여 위선적이고 몸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 솔직한 감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나르시스식의 자기 중심적 태도를 더 중요시 하는 추세로 되어 가고 있는듯하다. 

쾌락에 대한 생물학적,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해 보면 통증(pain)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쾌락과 통증이 뇌에 도달하는 생물학적 경로가 유사하기 때문에 통증이 어떤 상황에선 쾌감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증이 수직선이고 쾌락이 수평선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전제한다면 사람들은 두 직선의 교차점 주위에 머무르면서 통증이나 쾌락을 거의 느끼지 않으면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를테면 손가락이 불에 데이면 수직축의 통증점수가 올라가고 사탕을 먹게 되면 수평축인 쾌감전수가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통증을 제어할 수 있다면 통증이 쾌락으로 바뀌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 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쾌감에는 각성의 쾌감과 이완의 쾌감이 있다. 각성 현상은 생명 유지를 위한 과정으로 먹기, 배설, 성행위, 사회적 활동 등으로 긴장각성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다. 생명유지를 확보하기 위한 행위 뒤에는 반드시 휴식, 이완의 과정이 따른다. 이완 상태는 각성이 끝난 후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 상태이다. 꿈과 같은 상태에서 억눌린 감정이 해방되고 자유스러움과 더불어 쾌감을 느끼게 된다.
아편류 물질을 투여하거나 엔도르핀이 체내에 증가하면 고통의 감소와 더불어 안정과 쾌감을 가져온다. 엔도르핀의 발견으로 이미 신(神)이 우리들에게 고통을 없애주는 물질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다. 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경감되는 것은 엔도르핀의 분비 때문이다. 
“나는 어떤 쾌락에 중독되어 있는가? 
 중독의 결과는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나?
 중독을 끊으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그 중독을 대체할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를  항상 염두해 두면서 하루하루를 중용으로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현대와 같이 옹색하고 저속한 시대에서는 야비하고 육체적인 쾌락만이 우리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위로며 기쁨일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쾌락을 뜻하게 않게 덮치는 재난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고난에 의해서 쾌락은 얻어진다. 
마시고 먹는 쾌락은 먼저 그것에 앞선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쾌락이기 때문이다. ‘쾌락은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 그 자체 속에서 쾌락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현대를 살아가면서 위험한 경지로 쾌락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오로지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의식적인 성찰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얼마나 좋은지, 무엇이 얼마나 해로운지를 판단하는 노력을 함으로써 적절한 수준에서 멈출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을 해야 한다.

문화적으로 중용(中庸)을 따르는 지침을 스스로 갖는 일이다. 이런 일들은 종교가 하려했던 일이기도 하다. 모든 종교에서 하나같이 욕망을 조절해야한다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며, 믿고 따를 수 있을 만한 종교를  찾던가 새로운 지침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우리 각자의 쾌락이 삶을 삼켜버리지 않도록 중용의 길을 스스로 발견하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