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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의료의 주술적 신비화

[최상묵의 NON TROPPO]-<58>




- 가운을 벗어던지자-


의사를 생각하면 문득 흰색 가운(gown) 연상하게 된다. 가운이 의사의 심볼인 것처럼 셈이다. 하긴 미용사 요리사까지 요즈음 흰색가운을 입긴 하지만 같은 흰색의 가운이라 하더라도 느낌은 매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같은 가운을 입었다고 해서 미용실을 병원으로 착각할일도 없을 것이고 병원으로 이발, 미용을 하러 일도 물론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얄팍한 천에 불과한 것이긴 해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매우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이 입은 가운을 처음부터 색을 택했을까? 아름답고 고상한 색이 허구 많은 중에서... 하지만 역시 빛깔로 선택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희다는 것은 그만큼 깨끗하고 신성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음을 물론이거니와 만일 가운을 사람의 색깔과 같은 붉은 천으로 만들었다면 의사들은사람의 소홀히 취급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붉은 가운데 피가 묻었기로서니 흔적이라도 있을 것인 반면 새하얀 가운데떨어진 방울은 소중함이 한결 선명하게 두드러져 보일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은 필자만의 억측일까? 가운의 빛깔이 갖는 시각적 상징성 때문에 의사들이 가운빛깔처럼 창백하고(?) 냉정하고 지나친 결백성을 지닌 지성인의 상징으로 보여져서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의사의 가운의 좁은 면적에서 의사의 인품을 나타내는 피부로서 다양한 영상들이 담겨져 있어야 하며, 단순한 면적이 아닌 공간성(공간성) 나타내는 여유와 따뜻함이 담겨있어야 것이다.


사람들은 특정한 의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있는 선입견 같은 것이 있는 법이다. 받을 있는 선입견 같은 것이 있는 법이다. 의상의 상징성의 힘에 지배당하는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평복을 입은 재판관을 보고는 두려워하지 않으나 일단 제복을 입은 재판관 앞에 서면 누구나 떨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제복은 특권의 상징이 된다. 의사들의 가운도 특권의식이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도구로서 제복의 성격을  상징적의미를 은근히 많이 내포하고 있는 중에 대표적인 것이다.

사실 의료시술엔 기술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주술적인 측면이 많이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없다. 의사와 환자간의 의사소통이 결여되어 있는 압도적이고 일방적인 현상이나 권위주의적 태도와 권위에 대한 환자의 지나친 수동적 태도와 복종 등은 치료기술, 의료시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상징적인 의사의 위상을 높여주는 사회적 기능으로서 지금까지 관계처럼 수행되어 것이다.


의사들이 입고 있는 흰색의 가운도 의료의 주술적인 측면을 과장, 증폭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증표이다. 더구나 의사라는 직업은생명을 구하는 의술 가진 마술적인 기술의 상징으로 더욱 의사를 신비화하는 시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잠재되어 있다. 치과의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치과의사들을 생명의 극적인 구출이란 명제가 결여된 단순 반복적인 작업이 대부분이고 보조인력(위생사, 기공사) 역할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치과의사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전문지식과 기술을신비화라는 덫으로 더욱 치장해야할 필요성이 더욱 많아지게 된지도 모른다., 치과의사의 능력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특별한 비술이가 비법이 그다지 없다는데 고민이 있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치과의사들은 오히려 치료 외적인 부분에서 주술적 치료효과를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고급스런 가구나 장비들로서 치료실 내부를 지나치게 화려한 치장으로 장식하려하고 자기 알리기 홍보를 지나치게, 과장되게, 허풍스럽게 하는 경향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치과학문 연구 분야마저도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본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우식예방 백신 개발에 대한 엄청난 많은 세월과 많은 양의 연구비와 노력을 경주했는데도 아직도 전략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초기 연구과정에서 과감하게 방향을 선회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기대감 때문에 연구를 아직도(?) 계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기술에 대한 냉정하고 과학적인 평가방법이 뚜렷이 없다는 때문에 더욱 의료시술을 신비화하는데 속수무책일 수도 있다.


의료시술 평가를 위한 올림픽도 없고 평론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의료시술은 어떤 타인에 의해 조정 평가 받을 수도 없고 평가되어서도 안되는 특별한 자율성(Autonomy) 권위를 부여 받은 셈이다. 그래서 의료시술은 더더욱 가운이란 베일 속에 묻혀 신비화, 주술화 되어가면서 불필요한 권위의식으로 군림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나친 권위주위를 탈피하고 의료를 지나치게 신비화 시키는 시각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환자와 의사가 평등한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역동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신비의 베일인 가운 과감히 벗어던질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가 것이 아닐까?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