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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갑 질 마왕 최순실 1 : 박타령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32>



   농가 몇 십 채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시골 동네는, 이제 천연기념물보다 귀해진 마음의 고향이다.  한집 건너 한 마리쯤 변견도 반려견도 아니요 그저 고만고만한 누렁이를 길렀다.  그래도 달 밝은 밤이면 제법 조상의 본성을 드러내어,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이집 저집이 뒤따라서, 종내 견공들의 합창에 온 동네가 떠나간다.

 참다못해 막 짜증이 날 때쯤, “깨갱!”하는 구슬픈 비명소리와 함께 갑자기 동네가 조용해진다.  새벽 밭일 나가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선잠을 덧 들린 어느 아재가 홧김에 개 옆구리를 걷어찬 것.  그래도 달처럼 희고 둥근 박들이 너 댓개 올라앉은 초가지붕은, 보기만 해도 배부른 우리 민족의 힐링이었다.  제비가 물어온 박 씨를 심으면 착한 사람에게는 금은보화가, 악한 사람에게는 온갖 못된 짐승이 나온다는 흥부전 박타령에서, 우리만의 남다른 기복 사상을 읽는다.  박 타면서 “쌀밥 나와라, 쓱싹” 주문을 외우던 배고픈 민족이었다.


   최순실 게이트에 불을 지핀 것은 8할이 언론이요, 그중 8할이 종편(綜編) TV이었으나, 근본은 박대통령 자신이 자초한 일이다.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온 박타령도, 친박 가박 비박 진박 멀박 반박 등등 끝이 없었다.  국정운영에 필수적인 시스템은 사라지고, 사람, 그것도 제왕적인 대통령 한 사람을 중심으로 국가가 작동했다는 얘기다.  제왕이 진실로 원했던 것은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 “순실 한 사람”이었고, 대통령은 학력·경력·인성 모두가 함량미달인 여인의 손끝에 놀아난 것이다. 

 공권력을 총동원하여 대기업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고, 꼬리를 내린 기업 CEO들은 대통령을 등에 업은 비선 실세에게 프로텍션 마니, 즉 삥을 뜯기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 막바지에 기자가 박원순 후보에게 물었다.  “재원이 엄청나게 드는 공약사업들을 어떻게 해내시렵니까?”  “기업에서 협찬을 받으면 됩니다.”  이런 ‘협찬의 달인’을 선택한 시민이 문제지만, 삥 뜯기는 죄질이 나빠도 시민을 위해 썼다면 정상 참작은 된다.  과거 돈 드는 정치시절에 기업에서 갈취한 정치자금도 최소한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그 돈을 사리사욕에만 써서,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경기불황을 뚫고나갈 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다면, 이는 국가경제와 국민을 해치고 망친 범죄행위로서 용서할 수가 없다.


   지난 10개월 “분노를 선동하는 손가락(트럼프 후보)”을 포함, ‘분노’를 주제로 10여 편의 칼럼을 썼다.  “월가를 점령하라!”던 99%의 분노는 트럼프 당선이라는 의외의 반전을 가져오고, 째비도 안 되는 여인의 부끄러운 ‘슈퍼 갑 질’에 분노하여,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럽다.  온순한 누렁이도 참는데 한도가 있으니, 온통 시끄러운 반응은 국가 망신을 증폭시켰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박씨 고집’이 꺾였을까?  그 많은 갈취를 딸을 위해 저질렀다니 더 기가 막힌다.  천부적인 재능과 초인적인 정신력, 그 위에 거의 10만 시간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세계정상에 우뚝 선 피겨여왕 김연아.  수업은 대충하고 어린 나이에 혼전출산 한 웰빙의 딸에게, 승마로 제2의 김연아를 꿈꾼 철없음이라니.  호박에 줄그어 수박이 되는가? 

 온갖 부정과 국정농단의 끝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었다.  그래도 막판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청와대에서 화초로 자라 잇달아 부모의 참혹한 죽음을 겪고,  졸지에 혈혈단신 나락으로 떨어진 절박한 상황에서, “악마의 속삭임” 같은 주술(呪術)에 넘어간 것 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정치무대 18년차에 여전히 주술사의 딸을 국무(國巫)처럼 모시고도, 아직도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지 못하니, 그것은 대통령직 수행에 결정적인 무능과 철없음을 의미한다.  온 국민이 부끄러운 이유다.


 * 대통령에게 칼끝을 겨눈 주체가 누군지는 몰라도,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오는 새로운 팩트에 국민은 그저 놀랄 뿐이다.  결과를 점칠 수는 없지만, 그 동안 느낀 생각의 흐름을 기록해 둔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