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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성숙한 사람, 성숙한 사회

[최상묵의 NON TROPPO]-<51>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와 경제제원을 받았던 수여국 위치에서 지금은 다른 나라로 원조를 제공하는 공여국이 된 나라는 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무서운(?) 저력을 지닌 위대한 국민임에 틀림없다. 유례없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탓으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 또한 만만치 않게 많이 있다. 그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세대간의 사고의 격차가 심하게 발생하여 세대 간의 대화의 단절은 물론이고 어떤 사물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이나 해석도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현상이다. 필자의 세대는 수여국의 위치에서 공여국이 되는 모든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면서 성장하고 관찰하면서 살아온 세대이다. 그런데 확실히 옛날보다 잘 살고 있는 건 틀림없다.

옛날엔 상상도 못했던 자동차를 집집마다 두고 살고 소풍 갈 때나 삶은 계란 맛을 보았던 달걀을 요즘 애들은 먹지 않으려고 몸을 비틀고 있다. 계란보다 더 맛 있는 게 지천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아직도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휙휙 던지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고, 식당에서나 음식문화에서도 예의를 벗어난 풍경들을 너무 흔하게 접하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꼴불견의 작태나 기업하는 사람들의 도덕성 상실 등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는 선진대열에 진입하기는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경제적으로 살기는 풍요로워 졌는지는 모르지만 의식구조는 옛날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느낌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화두는 「선진」이란 용어에 매달리고 있다. 선진이란 말에 집착하고 있다는 뜻은 그 이면에 아직도 어떤 특정한 기준점에서 우리가 후진적이라는 자각심이 깔려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란 표현을 하기엔 너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발전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딱히 선진국 대열에 확실히 진입했다고 말하기도 어정쩡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들이 「발전」만을 국가목표로 삼고 이것을 위한 온갖 시책과 추진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그 예외도 아니다. 발전만 하면 무엇인가 좋은 결과가 오리라는 막연히 생각하면서 발전자체에 몰두해 왔다. 대체로 이러한 발전의 속살은 경제제일주의, 물질지상주의, 윤리성 마미, 도덕적해이 등의 부작용을 수반하는 부정적 결과만을 생각하는 방식의 개발과 발전 주류였다.
발전이란 그 가치 목표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곳에 도달하는 과정, 수단과 방법에 있어 가장 완벽하고 도덕적으로 성숙된 것이어야 한다. 발전을 성숙한 사회로 향하는 변화로 생각한다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발전이 되어야 하며,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과 가치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인간의 삶을 드높이는 사회라야 한다면 발전 또한 인간과 사회를 위한 것이라야 한다. 인간이 의식주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없듯이 경제구조만의 충족으로 사회는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이 발ㄹ전을 추구하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인간 중심의 삶의 가치를 찾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개인을 만들고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기술적, 문화적, 도덕적인 잠재력을 최고조로 발휘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발전의 궁극적 목표가 된다.


최근에 미래지향적인 선진사회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사회’, ‘품위 있는 사회’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성숙과 품위의 개념을 정의하기가 모호하고 매우 주관적 견해가 개입할 여지가 많아서 어떤 국가나 사회가 성숙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기준을 잡기가 애매한 점이 있다. 성숙이나 ㅍ위라는 말은 개인의 특징을 나타내는 용어는 될 수 있어도 사회의 성숙여부에 사용하기는 마땅치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발전된 사회 내지 성숙한 사회를 생각할 때 반드시 인간 개인의 성숙이 선행되어야 한다. 개인의 성숙이 곧 사회의 성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성숙한 사회는 시민이 주인이며 성숙한 사회의 덕목은 자발성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독자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역량을 키워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원활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좋은 사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성숙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성숙하 사회가 될 수 있다. 사회가 성숙해지면 그속에 사는 시민도 자연스럽게 성숙해 질 수 있는 환류적 순환 논리도 가능하다.


성숙한 선진사회를 지향하려면 사회제도가 합리적이고 성숙해야 하며 넓은 의미의 교육으로 마음의 프레임을 개선해야 하며 윤리강령 정착의 제도적인 노력도 함께 이루는 것은 필수적 요구사항이다. 미래 비전을 담은 사회가 바로 성숙한 사회일 것이다. 성숙한 사회를 향하는 선진사회의 성취를 위해서 절대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애데 와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절실한 「합리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지나친 감성주의가 심해서 걸핏하면 집단적인 흥분을 많이 보게 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기술 혁신의 충격이 계속 우리를 억압하고 사회문화가 다원화되는 현상이 심대하며 전지구화(globalization)의 물결 속에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서 낙오되지 않을 선진사회가 되려면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한 생명존중의 정신과 정의롭고, 품위 있는 복지 사회의 정착과 도덕 사회의 건설로 문화적으로 풍요한 사회를 만들 일이다.


문화의 세계화하는 단계로서 문화적 교양을 갖춘 사회무대에 진출을 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류나 K-POP 같은 대중문화도 좋지만 구보다 더 고급문화, 정신문화에 창의력을 발휘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비전을 담는 사회가 바로 성숙한 사회이다. 미숙한 어린아이처럼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우리 현실과 사회는 깊이 있는 성찰과 신선한 모형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요즈음 같이 어수선한 사회, 점차적 상황에서는 보다 절실한 성숙된 사람과 성숙한 정신문화가 필요할 것 같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