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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현대의학의 딜레마 ‘플라시보 효과’

[최상묵의 NON TROPPO]-<50>



옛날 아이들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 손은 약손’ 하면서 배를 문질러 주면 아픈 배가 감쪽같이 나은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엄마 손에서 나오는 자기장 때문에 낫는다고 하지만 그보다 가장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엄마의 정성이 들여 있는 손길이 심리적 안정감을 줌으로 해서 복통이 가셔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때, 엄마 손의 치료 효과는 의학에서 말하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같은 것이다. 실제로는 치료에 아무런 도움이 되는 약이 아닌데도 환자가 도움이 될 것 이라고 믿고 복용함으로서 실제로 증상이 호전되는 현상을 ‘기대효과’ 혹은 플라시보(위약) 효과라고 한다.

플라시보 효과는 아주 흥미롭고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 그 효과는 플리시보를 받은 환자가 진짜 약을 투여한 환자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성경에서도 환자가 예수의 옷자락을 스친 것만으로 병이 치유되었다는 대목이 있다. 신앙요법에 의한 치유사례가 소개되기도 하지만 의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고 아마 플라시보 효과 때문에 일시적으로 치유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 생각이나 기대감으로 인해 생화학적 실제가 변환될 수 있음이 증명된 연구 결과는 많이 보고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발표된 것은 플라시보를 복용 후 나타나는 현상에 관한 것이다. 당분이나 염분과 같은 전혀 무해하고 약효가 없는 물질을 약물대신 투여해도 의학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보고되었다. 화학요법을 받게 되면 머리가 빠질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하고 나서 약 대신 몰래 위약을 복용 시킨 환자들의 30%가 실제로 머리카락이 빠졌다는 연구결과 같은 것이 바로 그 본보기이다.

생각이나 믿음, 욕구 등이 세포조직과 기관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물학적 매커니즘을 요즈음 뇌 과학 연구 기술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라틴어로 ‘기쁘게 하다(placer)’에서 유래한 플라시보 효과는 마음이 몸(신체)의 심오한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심신상호작용(mind-body interaction) 때문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새로운 약이나 치료법의 개발에 혈안이 되다시피 하는 의료계나 제약회사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경우에 가짜 약(플라시보)이 진짜 만큼 훌륭한 효과를 보인다는 사례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


현대의학의 발전이 오로지 신체(몸)만의 생리작용에만 집착해서 발전을 해온 것만은 사실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질 수 있는 것만을 신뢰하는 현대인들은 마음의 작용을 우습게 볼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플라시보의 효과의 근본은 기대 효과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현대의학도 마음이 몸에 미칠 수 있는 힘을 인정함으로써 마음과 몸은 따로 생각하는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의 이론을 뛰어넘는 새로운 의학의 방향을 찾아 나설 때가 온 것이다.

현대의학이 실제로 의학적 혜택을 받은 치료 중에 1/3이 위약효과에 의한 것이라는 충격적인 평가를 내린 학자들도 있다. 플라시보효과는 실제로 환자들의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과학적 의학의 관점에선 엄청난 낭패인 셈이다. 당분간, 아니 영원히 플라시보 효과는 과학적 의학분야에서 많은 낭패와 딜레마를 줄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 세기까지 의료가 제공해줄 수 있었던 혜택들은 일부 간단한 외과적 처치와 특수한 몇 가지 치료를 빼고 실제적으로는 모두 자기 치유였었다고 괴변 아닌 괴변을 토하는 학자들도 있다. 의학이 신비롭고 고고한 지위를 확보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의사들이 스스로 작동되어 치유된 모든 과정마저도 모두 의사 자신들의 업적으로 챙겨 넣고 있었던 까닭도 있다.

 오늘날 의료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별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플라시보 효과가 현대의학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는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플라시보의 효과는 심리적, 사회적 환경 등이 모든 치유과정에서 인과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기능성이 더 많기 때문에 치료의 효과는 생리적 차이보다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환경, 정신 상태, 행동 등에서 서로 매우 다른 점이 더 많기 때문에 환자의 신체의 상태는 평생 동안 어떻게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했는지에 달려있다. 치유과정은 의료 기술의 이해와 통제범위를 훨씬 초월하는 수많은 요인들에 의존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때문에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높은 수준의 정신적인 상호작용이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해주어야 할 일은 오히려 치료가 아니라 돌보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 대 인간의 만남으로 고통을 이해하고 쓰다듬고 같이 고민하는 일이다. 병은 신체적, 생리적 원인으로 생겨 나는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전체와 관련 된 것이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는 전인적  만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의학과 의료를 지나치게 산업적 측면과 치료 기술적 측면으로만이 강조되어 의료중심주의로 향해 달려오기만 했다. 의료가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측면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관심이 부족한 상태이다. 건강이나 보건이라는 주제를 놓고 의료관련 이익단체들의 논의만 무성의할 뿐이다. 의료 종사자들의 밥그릇 논쟁과 사유만 부각되고 토론이라 정책은 없고 목소리만 클 뿐이다.

정치인들마저도 온갖 화려한 수사법을 동원하여 말만 화려하고 진정성이 없어 보이며 정치인들이 궁지를 벗어나기 위해 사용하는 정치적 위약은 매우 다양하다. 자기가 가장 개혁적이고 청렴한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특정이익 집단에 비위를 맞추는 작태를 보이는 현상도 일종의 플라시보 정치(placebo politics)일 것이다. 의학적 플리시보는 때로는 이익이 되기도 하지만 정치적 플라시보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 더러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