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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분노 5 : 묻혀버린 선의(善意)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15>

 

 

   난전(亂廛)에도 상도의가 있고, 성직자 중에서도 상상도 못할 범죄자가 나온다.

 역경과 핍박을 삭여낸 사람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투사가 되지만, 분노에 굴복하면 짐승만도 못한 테러리스트가 된다.  정상적인 민주시민은 가혹하게 누를수록 용수철처럼 반발하는데, 국민을 짐승처럼 가두고 사육하는 동물농장 북한에서는 그마저 불가능하다. 

 가난해도 자유와 활력이 넘치던 민주국가 대한민국에, 난데없는 10월 유신은 날벼락이었다(1972).  당시의 남북관계·국제상황과 유신의 평가는 뒤로 미루고, 적어도 종신집권을 기도한 독재체제라는 점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분노와 저항은 당연한 반응이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학순 주교를 구속하자, 마침 세계적인 사회참여의식 속에 유행하던 ‘정의구현운동’과 맞물려,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출범한다.  그 후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하고, 6·29선언을 끌어내는 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 

 

   민주화의 큰 물줄기를 잡았으니 숨 한번 고르고, 성직자요 어른답게 세속의 정치·사회문제에 너무 자주 개입하지 않았다면, 비(非)신자들에게도 여전히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이란처럼 신정일체 국가를 빼면, 종교의 정치개입은 미개한 후진국의 대명사 아닌가?  동족살상 침략의 전과자요 호전적인 3대 독재의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사는 대한민국에서, 종교가 이념에 개입하는 편향이 엿보이면, 반드시 반발의 역풍이 분다. 

 사제 제복을 걸쳤을 뿐 제주 해군기지·FTA·미국산 쇠고기·연평도 포격사건 등 사사건건 흔한‘시민단체’ 급으로 나서는 좌편향은, 대척점에 서는 우 편향 단체의 탄생과 분노와 저항을 자초하였다.  J 일보 칼럼을 쓴 논설위원은, 실제로 무례를 저지르는 경우도 젊은이보다 노인이 많고, 시위현장에 가스통이나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나는 것도 장 노년층이며, 젊은이들의 ‘노인 충(蟲)’이라는 넌더리를 이해한다고 썼다. 

 노인을 논하다가 별안간 웬 장(壯)?  ‘어버이연합’  노인네가 가스통을 멘다고 쓰면 읽는 사람이 비웃을까봐?  경어(敬語)의 나라에서 연장자에게 ‘무례’라는 표현부터가 무례하다.  막무가내(Obstinate)면 몰라도 무례(Insolent)라면 초등교육을 잘못 받은 언론인의 ‘갑 질’에 다름 아니다.  보수우익의 대명사인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젊은이의 시위는, 처음부터 폭력적이고 좌경의 색채를 띨 수밖에 없었으니, 노인들도 당연히 보수우경으로 반응했던 것뿐이다. 

 

   좌경 시위에 분노한 어버이연합은 침묵하는 보수를 대변하여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런데 갑작이 대한치과의사협회에 반(反)하여 회원들에게 폐를 끼치는 ‘UD 네트워크치과 문제’가 터졌다.  자세한 전말은 생략하지만 다수 치과의사를 고용한 전형적인 사무장 치과 체인점으로, 대폭할인을 미끼로 한 과잉진료가 의심되고, 국민의 건강과 치과개원가의 초토화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어버이연합이 뜬금없이, “치과의사협회의 집단이기주의가, 보철 수가를 낮춰 국민의 구강보건에 봉사하려는 네트워크를 탄압한다!”며 시위에 나섰다.  협회와 회원들이 오랜 세월 쌓아올린 신뢰가 큰 상처를 입고, 자중지난의 조짐마저 드러냈다. 

 노인연합 회원이 1,700명이라지만 등록은 백 명 정도란다.  보수를 대변하던 비전문직 시민단체가, 전문직에 관한 그릇된 정보에 흥분하고 판단착오를 일으켜, 노인 폄하를 자초하는 꼴이 되었다.  정의구현사제단도 5천여 사제 중 2백여, 명단이 밝혀진 분은 115명쯤이라 한다. 

 대체로 1%가 안 되는 소수가 분노하고 흥분하여 잘못을 저지르면, 이것이 전체의 일인 양 일반화되어, 전체 모(母) 집단이 터무니없이 공격받고 피해를 입는 현상이 다반사다.  또 하나의 부적절한 분노의 후유증이다.

                                         

* 전문직들이 보기에 정의구현사제단(Catholic Priests Association for Justice)은 뜻이 맞는 사제들의 사적인 모임, 임의단체일 뿐이다.  정치적으로는 고학력 동업자끼리 결성하여 현실에 참여하는 유권자 단체로서, Justice는 아무나 쓸 수 있는 단어지만, 등록된 공식 협회가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Association이라는 어휘는 조금 낯설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