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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분노 1 : 분노의 역사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111>

 

   ‘20세기를 보내며’라는 글에서(1999), “신이 죽고 영웅도 사라졌다면, 그 원인이 풍요의 추구에 올인 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貪慾)인지 역사를 파괴한 이념 과잉(瞋恚: 분노)인지 너무 깊이 들어간 과학문명(愚癡)인지, 아니면 3자가 뭉쳐진 신의 움직임인지 알 수가 없다.”라고 썼다.  21세기 들어 세계적인 사회현상으로 굳어진 ‘분노’의 분출을 보면서, 오욕칠정에 묶인 인간의 세 가지 독(毒)이 탐진치임을 다시 실감한다. 

 분노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본능이자, 내 뜻을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감정적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치밀며 부교감신경 활성도가 높아지면서, 큰 근육에 혈액이 몰려 뇌는 취약해진다.  일단 화를 발산하면 힘이 용솟음치지만, 그 순간은 짧고 피해(후회)는 크며,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전 전두엽이 노화되어 더 작은 일에도 더 크게 분노한다. 

 분노조절장애의 치유법으로, 명상을 통하여 상황에 대한 판단과 인식의 틀을 바꿔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 다스리는 연습을 권하기도 한다.

 

   역사상 사회 분쟁은 전제군주와 귀족 또는 성직자와 군주 간의 권력다툼이었고, 사회 계층 간의 분노는 산업혁명 후 프롤레타리아의 형성에서 비롯하였다고 한다.

 근대전쟁은 총력전이므로 국민의 광적인 지지를 필요로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帝國)주의 국가의 팽창이 충돌하여 축적된 응력이 폭발한 결과로, 국가는 ‘민족’이라는 어휘를 만들어 적국에 대한 분노를 총동원에 이용하였다.  승전국들의 탐욕으로 출구를 잃은 패전국 국민의 분노와 세계정복의 꿈에 들뜬 독재자 히틀러의 결합은, 처음부터 제2차 대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독일국민은, 대부분의 소득을 유태인이 차지하고, 아리안에 비하여 열등(?)한 슬라브 민족 소련의 수출품인 공산주의 탓으로 우리가 굶주린다는 히틀러의 선동에 넘어갔다.  집집마다 차 한대(폭스바겐)를 약속한 그의 장미 빛 꿈보다, 절망적인 현실을 가져온 유태인의 착취(?)와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에 치를 떨며, 16세에서 65세 노인까지 총을 들었다.

 일본은 제국주의 팽창야망만 같을 뿐 조금 다르다.  야욕을 미화하기 위한 “구미제국주의로부터 아시아 국가를 보호한다.”는 슬로건은 속셈이 뻔하고, 조선·중국 식자(識者)들의 눈에는 ‘말하는 원숭이(解語猿)’ 정도였던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겼다는 사실은, 참기 어려운 굴욕이었다.  정치사회적으로 미개한 천황·신도(神道)·군국주의의 결합체는, 전쟁 수행능력도 미숙하여, 점령지에서의 야만행위와 옥쇄(玉碎)·가미카제라는 자국민 자해행위로 점철된 패전의 역사를 남겼다.

 

   전후 우여곡절 끝에 패전국 독일과 일본은 영국을 추월, 부국의 꿈을 이루었다.

 반대로 승전한 대영제국은 해체의 길을 걷고 경제력 순위는 밀려났다.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영국 2, 30대의 무력감과 끝 모를 분노는, 1950년대 오즈번의 희곡 ‘Angry Young Man’에 투사되어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 

 사회적 분노 제1호는 프롤레타리아 공산혁명으로, 제2호는 대공황 후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로 시작하여(1940 퓰리처 상) 보수의 본거지 영국 젊은이의 대세로 정착된 것이다.  제3의 분노는 중세에 꽃 피웠다가 오스만 이후 산업화에 낙오하고, 뒤늦게 현대문명에 합류하려는 이슬람의 진통이다.  이어서 초강대국 미국 월가(街) 자본주의의 ‘도덕적 해이’로 미증유의 경제위기가 시작되었고, 핀랜드 리비오의 게임 캐릭터 ‘Angry Birds’(2009)는 제4호 분노의 형상화로 보인다. 

 이들 분노가 온통 뒤엉켜 온 세계가 심한 몸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21세기는 인류의 분노와 자중지난으로 파멸의 세기가 되고 말 것인가?

 

* 일촉즉발의 냉전체제 하에서, 베를린 봉쇄·한국전쟁·쿠바위기·베트남·아프간 전쟁 및 사막의 폭풍 등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   요동치는 세계경제에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한 획을 긋고,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가 인류에 끼친 득실은 무엇이며, 그것이 월가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를 키워서 오늘날 분노와 경제난국의 진원지가 된 것인지는, 실로 풀기 힘든 고차방정식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양대 두령이 권좌에서 내려오면, 숨죽이고 있던 군소 두목들이 발호하여, 중구난방과 잔병치레로 편할 날 없는 세상이 되는가?

** 이 글을 쓴지 50여일 만인 엊그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었다.  EU 안에서 독일 프랑스 다음 3등 국가로서, 참아왔던 영국인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인가?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