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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좋은 사회 만들기”

[최상묵의 NON TROPPO]-<45>


 

수천만 년 전 유인원들도 개개인으로 사는 것보다 무리를 이루어 사는 것이 개개인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장점이 있음을 익히 알고 개개인의 자유를 상당히 포기하면서 사회 공동체를 진화시켜왔다. 17세기 철학자 흡스는 개인이 자신만의 이익을 쫓는 야만적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회를 이룩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성적인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개인들의 상호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서 사회 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람은 루소(Rousseau)였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반드시 공동체 사회생활이 진화적인 순수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다. 개인의 자유를 포기한 만치 공공의 이익이 생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승자와 패자가 탄생함으로서 패자가 고통을 받아야하는 불공평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다 같이 잘 살기위해셔 공동체 사회로 진화 시켜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빈부의 차이가 생기면서 지배자와 패배자의 상태로 변질되면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받는 모순을 낳고 말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살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나 다른 한편 생존의 위기에 처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데 문제가 있다.
지금 세상이 행복하지 않고 고통스럽다면 부의 집중현상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행해 하고 미움과 경쟁의 상태로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공동체 사회의 핵심은 서로 협력하면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돕고, 한편 자신이 능력이 부족할 때는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진화적 자연선택에 따르는 성공적 사회생활 모형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일 컫는 ‘좋은 사회’ 사람이 살기가 가장 편한 사회의 모습은 개개인의 독자적인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좋은 공간을 많이 마련해 주는 사회이다. 즉 과거의 성공적이었던 창의적 업적은 끊임없이 부추기고 기리며, 새로운 창의성이 계속 더 발현되도록 도와주고 장려하는 사회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교양 있고, 자유로워지며, 책임감 있는 존재로서 사회에 남아 있게 배려해 주는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조직이 더욱 활성화 되려면 모든 조직구성원들이 주변 환경 안에서 자원을 얻기에 불편함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대학에는 활기찬 학생들이 넘치고, 은행에는 예금이 넘치며, 동물원에는 생기 있는 동물들이 득실거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 살면서 사회화의 조화를 이루고 우주의 모든 자연법칙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정돈된 위치를 지키는 일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공기, 땅, 바다 또한 지나온 과거의 일과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무질서한 행동을 하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도 위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있는 현재의 위치에서 가장 독특하고 유일한 의식의 주체이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뿌리를 둘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자기행동에 책임을 지고, 자신의 마음과 욕망을 통제함으로써 주위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한 의무가 있는 것이다. 즉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을 초월하는 것이 진화된 사회를 이룩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다가올 미래 사회는 우리스스로가 만들어낸 쓰레기와 공해에 의해 퇴화되어 생명 없는 먼지로 돌아갈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은 매우 현실적이며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수천년 전에 혜성이나 소행성의 충돌로 지구상의 생명이 대부분 멸종하는 사건이 앞으로 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설사 인류는 멸종하더라도 지구는 계속 존재할 테고,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할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서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의 종말이 뿐이다. 우리의 지금의 행동은 지구에서 그리고 다른 별에서 펼쳐지게 될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미래는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이러한 책임을 방기하면 미래는 우리에게 냉혹해지고 무서운 괴물의 손아귀에 지배되고 말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세계(사회)의 중심이며 사회가 이러한 중심체로 가득차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회는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사회는 생명과도 같다.

사회는 어떠한 시대에 있어서도 사람의 실현의 발휘를 방해 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언제가 사회와 한 몸을 이루며 어느 쪽이나 다 함께 개인과 사회의 보존이란 동일한 목적에 몰두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세상을 만드는 것은 신이 아니다. 앞, 뒷집, 양 옆집에 꼼지락 거리는 그저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 만든 세상이 살기 힘들다고해도 옮겨 앉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