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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詩가 있는 풍경 17]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귀향]

'사평역에서'는 올해 환갑을 맞은 곽 시인이 스물하나에 쓴 시입니다.
그 나이에 무슨 호명할 '그리웠던 순간들'이 그렇게 많았을까 싶겠지만,
소위 문학을 한다는 청년들은 보고 느낀 것들을 안으로만 쌓아두는 버릇이 있거든요.
1976년 겨울, 군입대를 앞둔 그를 위해 문학동아리 선후배들이 마련한 환송회에서
시인은 27행의 이 시를 처음 공개했답니다.

반응은 아주 즉각적이었다는군요.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고, 어떤 이는 주섬주섬 종이에 시를 받아 적기도 했답니다.
상상이 갑니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가졌던 그런 즉각적인 느낌과 긴 여운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처음 대했을 때의 그것과 거의 흡사했으니까요.
시인은 제대 후인 81년 이 시로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습니다.
이후 많은 시들을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오직 '사평역에서'만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이 시는 '축복이자 감옥 같은 작품'이기도 할 겁니다.

시인의 고백으론, '사평역'은 실재하지 않은 역으로 남광주역이 모델이라는군요.
심지어 톱밥난로는 전남 장흥 화진포구의 한 다방에 있던 난로에서 착안한 것이고,
사평이란 지명 역시 완행버스 안에서 만난 눈빛 맑은 아가씨의 고향마을 이름에서 따왔답니다.
그런 각각의 조합들이 시인의 감성을 덧입고 멋진 시어들로 재배치됩니다.

아래는 83년 출간한 그의 첫 시집 '사평역에서'에 함께 실린 '구진포에서' 전문.

 

몸 푼 강심에
돌들은 모여 무슨 꿈을 꾸는지
지난 겨울 못다 운 울음이나
가슴의 금빛나는 햇살로 엮어
물먹은 봄빛이 다리 아래 떨어진
꽃잎들을 다시 서러웁게 울리지는 않는지
한달음에 자운영 강둑길을 달려
그리움보다 먼저
떨어진 꽃잎들이 밀려오는 다리목 아래
내 스무살 적 보리피리와 함께 서 있으면
사랑이여, 속살 푸른 강물 속에서도
그리움은 더욱 푸르러 물 이끼로 설레고
마음보다 먼저 몸이 작아져서
잊혀진 얼굴들조차
강물에 풀어 다시 올릴 수 없을 때
저 슬픔 많은 은모래 한 알에도
이제는 어쩌지 못할 세상의 서러운 한들이
가슴의 불들로 물 위를 흘러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