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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전람회에서: 사계(四季)와 문화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94>

 

   유희영 이종상 김인중 이철주, 네 화백의 공통점은?  대전고등학교 출신에 50년대 후반 ‘루브르 동인회’ 회원이며, 김철호 선생님 제자다.  이후 십년간 대전고 황금기에는, SKY 대학 진학률이 전국 3위권으로,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 배경에는 훌륭한 스승들이 계셨고, 그 중에 박관수 교장·음악 김종석·미술 김철호 이 세 분을 으뜸으로 꼽는 데에 동문 간에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김철호 선생님을 회상해본다.  대전공고를 나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중등교원 검정고시로 미술선생이 되어, 40년을 평교사로 봉직한 후 정년퇴임 하셨다.  말수 적고 체수도 아담한 선생님은, 땅만 보고 걸을 만큼 행동도 조신했는데, 미술반 지망생이 의외로 많았다.  그중에는 화가로 대성하기도 하고, 평생 그림을 벗으로 삼은 의사 판검사도 많다.  인상파·후기인상파 화가를 입에 달고 살아 별명이 고흐요, 미술반이 아니었던 필자조차, 해바라기(고흐)·생트 빅투아르 산(세잔느)·타히티의 여인(고갱)을 여러 번 모사(模寫)하여 지금도 그 이름이 생생하다.  시험공부만 하는 것보다 음악과 미술을 잘 이해하는 학생이 성적도 우수하다는 정설을 새삼 확인한다.

 

   선생님은 불모지 대전·충남에 현대미술의 둥지를 트는 한편, 이 지역을 평생 부지런히 맴돌며, 동학사·갑사·대둔산의 4계절을 그림으로 남겼다.  프로방스에서 말년을 보내며 생트 빅투아르만 40여점을 그린 세잔느를 닮음인가?  자연의 풍광이 계절 따라 바뀌는 것은, 예술인만의 축복이 아니다.  중학 지리에서 현대문명·국가는 온대지방(회귀선-66도 33분 사이쯤)에서 발달한다고 배웠다.  짧은 농경기에 날씨에 맞춰 바삐 움직이고, 겨울을 나려면 식량 갈무리가 필수이며, 철따라 갈아입을 입성과 덮개에 땔감까지 준비해야 한다.  일 년 내내 먹거리가 지천이고 딱히 옷도 필요 없는 열대는, 유지비 싸고 바쁠 일·다툴 일도 없으니 가히 천혜의 땅이다.

 그러나 부지런히 움직이면 체온이 올라가고, 일사병·열사병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반대로 사람을 과로로 몰아가는 재앙인(?) 온대의 4계절에는 혜택도 많다. 

 첫째 살아남으려고 역동적으로 긴장, 건강이 증진된다.  둘째 춥고 더운 날씨의 시련이 면역력을 길러준다.  셋째 기억력이 향상되고 기록수단(날씨변화·농사일지)이 발달한다.  넷째 곤충의 완전 탈바꿈처럼 하나의 주기가 반복되는 경험은, 통찰력과 예지능력을 낳는다.  마지막으로 자연 풍광의 변화와 생성소멸을 보면서,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예찬하거나, 끝내 절대자를 믿게 되는 신앙의 자산(assets)을 얻는다.

 

   이국적인 열대과일은 달고 향기롭다.  그러나 풍미로나 건강으로나 신토불이 ‘제철과일’을 못 이긴다.  계절밥상이 으뜸인 것처럼...  봄이면 쑥·달래·냉이 나물이 좋고, 여름에는 삼계탕·육개장에 오이나 미역 냉국이 제격이며, 가을바람 불어오면 추어탕과 오곡백과가 기다리고, 한 겨울에는 김장김치와 팥죽에 시래기·우거지·무청이 있다.  북에서는 얼음이 동동 뜨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냉면을 말아 먹고, 김치 썰어 넣고 김 가루와 깨소금을 솔솔 뿌린 따끈한 묵밥도 일품이다.

 “A man is what he eats.”라 한다.  계절의 변화는, 허기나 욕구로부터 자연의 리듬을 표현하고픈 예술적 충동에 이르기까지, 인생만사의 동기일 수도 있다.  탐미적인 영상미와 지순한 사랑을 추구한 윤석호 PD가, ‘자기복제’라는 시비를 감수하면서 고집한, 가을동화·겨울연가·봄의 왈츠·여름향기 4부작에서도 그런 맥락을 읽는다.  근세음악의 원조 격인 비발디 ‘사계’의 유산(heritage)에서 피아졸라는 ‘탱고 4계’를 작곡하였고, 김철호 선생님의 ‘동학사 4계’또한, 스스로 쌓아올린 예술세계의 마무리, 알파에서 오메가였음에 틀림없다.  선생님이 새삼 그립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