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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남도 밥상의 진수 -분당 ‘만강’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74>

           

와인 모임이 하나 있습니다. 첫 시작은 우아한 와인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알딸딸해지면서 종국에는 주종불문 들이붓게 되고, 결국 인사불성인 채로 귀가하게 되는 그런 모임입니다. 멤버 구성도 매우 다양해서 각자가 속한 세상사 이야기 하면서 술을 마시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지요.
그러기를 벌써 수년째인데, 그간 송년회다운 송년회를 해보질 못했습니다. 하여, 올해는 작정하고 거사를 치르기로 했는데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저희 모임 송년회의 최소 옵션이 별도의 공간, 훌륭한 음식, 접근성, 주류반입 여부, 와인 잔 제공여부... 좀 까다롭죠? ^^
고민 끝에 분당 야탑에 소재한 '만강 장어'로 정했습니다. 상호는 장어집이지만, 이 집에서 장어만 먹고 왔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만강이라는 상호가 전국적으로 몇 개가 있으니 구별을 하려고 그리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봅니다만.
결과는 올 해도 어김없는 인사불성 귀가입니다. 먹은 음식은 휴대폰에 찍힌 사진을 통해서야 알았고, 마신 술 종류도 나중에야 알았으니까요.


만강의 한상차림 음식 값은 흔히들 이야기 하는 '싯가' 혹은 '쥔장 맘대로'입니다. 대략 1인에 10만 원 잡으면 넉넉합니다. 한식에서 10만 원 내라고 하면, 눈을 흘기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양식이나 일식에서는 별 저항이 없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만드는 공력이나 귀한 식재료비 등을 따져보면 한식이 더 비싸야 마땅하지요.


이곳 만강은 남도음식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메뉴에 대체 뭐가 끼어야 남도음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대저, 남도 음식이란 게 젓갈이나 꾸미를 많이 하고 적당한 발효(홍어는 완벽한 발효) 역시 기본입니다만, 음식의 간 조절이 가장 중요합니다. 짜지만 물을 들이키지 않을 정도여야 하고, 감칠맛은 기본이지요. 대개 제철 생선과 해물들이 올라오는데, 민어, 병어, 낙지, 꼬막, 굴비, 홍어, 삼치, 굴, 장어(하모와 붕장어 등), 전복.... 요 정도는 올라와야 기본이라고 봐야겠지요.


서울에서 남도 정식을 내는 곳으로는 삼학도, 노들강, 병우네...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 식당들은 일반 장삼이사들보다 세도가들이 많이 찾습니다. 특히 삼청동 병우네는 이제 권력이 된 듯 보입니다. 과거 '신랑이 원스타면 마누라가 투스타'인 것처럼, 식당 손님 레벨에 따라 주인의 계급도 같이 올라가나 봅니다. 서초동에 위치한 삼학도는 인근 대학의 교수나 법률가들이 많이 찾고, 논현동 노들강은 기업의 CEO들이나 한량들이 많이 찾는 듯합니다.
만강도 제법 다양한 사람들이 찾습니다. 기업가나 회사원, 호기 있는 동네 사람, 골프치고 올라가는 한량, 음식 블로거, 남도향우회 사람들....


사장님이 벌교 출신이라고 하지만, 목포에서 학교를 다닌 관계로 음식 종류는 남도 해안가 음식을 총망라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일찍 고향을 떠나 위로 올라온 지도 상당히 되었을 법 한데 고향 사투리가 속칭 ‘원단’입니다. 그것도 징해버릴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전라도와 경상도 남자들은 웬만큼 연습해서는 표준말 쓰기가 어렵지요.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고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포 싸나이’ 남진도 의도적으로 사투리를 쓰는 것 같습니다. 하여, 남진을 떠올리면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유려한 노래도 노래거니와 그의 감칠맛 나는 사투리가 더 정겹습니다.
그런데 남도 음식을‘ 내는 남도 사람이 표준말을 쓰는 것도 좀 우습지 않겠어요? 완전 ‘갓 쓰고 MTB 타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감칠맛 나는 남도 음식엔 그에 어울리는 징한 남도 사투리가 어우러져야 제 맛이더라는 거지요.
선이 굵어 보이는 사장님의 외모와는 달리 음식 설명할 때 조곤조곤한 모습을 보노라면 약간 웃음도 나옵니다.



만강은 분당 야탑의 주택가 쪽에 숨어 있습니다.


 

덕자병어입니다. 몸통을 크로스 섹션해서 내온 것인데 사이즈를 추정해보니 어마어마한 놈이네요.



일단 봄동을 뒤집어서 덕자 한 점 올린 뒤, 맛된장 바르고, 갈치속젓 조금 그리고 마늘 한 점 올린 뒤에 입으로 쏘옥 넣으면 남도의 풍경이 촤라락 펼쳐집니다.


삼치회, 방어회 그리고 잘 숙성된 광어까지.


만강삼합입니다. 육회, 낙지 그리고 전복으로 만들었군요.


낙지 삼합 먹는 시범을 보여주는 연변 종업원 언니의 싸구려 팔찌가 저를 슬프게 하네요.


대저, 남도 음식에 홍어삼합이 안 나오면 섭하지라~~!


민어전 같습니다만, 기억이 희미할 뿐입니다.


갈치 두께가 어린애 팔뚝만 합디다.


덕자병어 조림이라고 해야 하나, 찌개라 해야 하나 시원하기 그지 없습니다.


보리굴비도 나왔어요.


요렇게 녹차물에 말아야 정석입니다. 만화 ‘심야식당’의 오차쯔께 세자매가 떠오르네요.


전투가 끝난 후의 장엄한 광경이죠? 위스키, 꼬냑, 일품진로, 화이트 와인 그리고 레드 와인 그리고 폭탄용 맥주(이미 치웠습니다만)들입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