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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부산에 가면 돼지국밥을... - 범일동 할매국밥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73>

 

 부산을 배경으로 했던 최근 영화 두 편이 관객의 이념적 스탠스에 따라 (서로 교대로) 한 쪽은 열광을 하고, 다른 쪽은 비난을 하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변호인'과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그냥 영화로 만들어야 하고, 또 보는 사람도 영화로만 봐야 하는데 제작자와 감독은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나 가르치고 싶은 것을 만들고, 관객 역시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세상인지라, 나치 괴벨스 시절의 그것에서 세상이 발전한 것이라고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런 영화 한 편을 보여준다고 해서 이 쪽 사람이 저 쪽으로 귀순할리도 없거니와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요. 결국 자기편들끼리 위로와 격려를 위해서 만들었다는 생각까지도 드네요.

불행히도 저는 '변호인'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이야기나 이미 내용이 알려진 영화는 예전부터 보지 않는 개인적 고집이 있거든요. 가령, '명량', '태극기 휘날리며', '광해', '실미도', '7번 방의 선물'... 같은 영화는 애초부터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취미가 영화인 제가 소위 '천만 영화'의 절반도 보지 않았다니 다소 의외이죠?


쓸데없는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부산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으로 대개 밀면과 국밥을 최우선으로 꼽고, 다음이 복국, 자갈치 시장의 회나 송정의 세꼬시 그리고 기장의 곰장어... 등이 아닐까 혼자 상상해봅니다. 그만큼 부산의 대표 음식이 바로 돼지국밥인 것이지요.

간간이 여기저기서 부산 돼지국밥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지만, 요즘 같은 대박 행진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 이후입니다. 마침 그 시기에 신춘문예 출신 요리사 박찬일이가 쓴 '백년식당'에서도 극찬이 있었고, 수요미식회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돼지국밥을 논한 적이 있었지요. 이 세 가지가 비슷한 시기에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바람에 결국 대박을 터뜨리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영화평을 통해 주요 대사들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심지어 외울 정도입니다. 국밥집에서 밥을 먹고 돈이 없어 도망을 쳤던 송강호는 변호사가 되어 다시 그 식당을 찾아 돈을 갚으려 하자, 국밥집 주인은 이렇게 말하죠. "돈이 아니라 사람으로 갚는 거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멋진 대사가 왜 통속적이라고 생각되는 거죠?)  또 송강호가 이런 대사도 날립니다. "정구지(부추)를 많이 넣어야 국밥이 맛있어!" 이 두 대사만으로도 부산의 돼지국밥은 게임 오버입니다. 천만 이상의 관객들이 직접 이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부산엔 이런 말도 있습디다. '부산 사람들의 혈관에는 돼지국밥의 육수가 흐른다!'라는 말! 그만큼 부산 사람들의 일상에서 돼지국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이겠지요.


부산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범일동 할매국밥집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이 아니라 유모차에 태우고 온 아이들이 많다는 거였습니다. 할머니가 등에 업고 온 아이들도 있었고요. 방에 앉은 손님들은 대개 어린애를 동반했는데, 저는 이 모습을 보고 사자의 새끼 키우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린 새끼를 절벽에서 밀어내어 강한 놈만 키운다거나 먹이 잡는 법을 가르친다거나 하는 사자들처럼, 부산 사람들은 갓난 아이 때부터 돼지국밥을 먹임으로써 호방한 부산 사내 혹은 부산 사람으로 키운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호방함이 간혹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해운대에서 택시를 타고 제법 먼 범일동 할매국밥까지 가자고 하니, 나이 지긋한 기사님이 거기를 잘 안다면서 호쾌하게 출발을 합니다. 그런데 목적지 근처에서 우리가 아는 쪽이 아니라 조금 다른 쪽으로 가는 겁니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하니, 자기가 단골로 가는 식당이 더 맛있다고 아무데서나 먹으라는 게 아닙니까? “돼지국밥이 다 그기 그기지!” 하면서 말입니다.


이 양반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부산까지 온 것을 모르니까 한편으론 그런 일방적 행동이 이해가 되면서도 약간 짜증이 밀려옵니다. 호방함과 호기스러운 독선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건가요?

​ 

가장 한가하리라 여겨지는 시간대에 찾아갔으나 그래도 기다란 줄이 서있네요. 

제법 알려지니까 이제 마케팅에도 신경을 쓰는 모양입니다.

그야말로 다양한 세대들이 찾습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만인에게 평등한 돼지국밥과 수육이니까요.

주방은 말 걸기가 힘들 정도로 바쁩니다.

국밥과 수육 가격이 참 착하지요?

기본 찬들이에요. 새우젓이 좋은 놈입니다.

야들야들한 수육입니다. 소주를 부르는 맛입니다. ​

사실 저렇게 썰어야 제 맛인데 어디 할머니 보쌈 스타일 수육은 모양부터 맘에 들지 않아요.

나주곰탕의 투명함처럼 돼지국밥임에도 육수가 맑습니다. 뼈를 넣지 않았고 또 오래 끓이지 않았다는 방증이겠지요. 

밥은 토렴해서 나오기 때문에 바로 후루룩 먹을 수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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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말마따나 정구지를 많이 넣어야 제 맛입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