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오늘의 책

[독후감] Cure에서 Care로..

-박재영 著 '개념의료'를 읽고


  나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가 매우 좋은 제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곧 말하게 될 나의 경험과 관계가 있다. 아직도 한 번 씩 집에 가면 엄마는 예전 죽다 살아난 아버지 이야기를 하신다. 70년대였는지 80년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 아는 분이 원양어선에서 내리면서 가져온 참치 회를 몇 점 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먹은 후부터 아버지는 원인도 모른채 시름시름 앓아누우셨다.

 동네 병원부터,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을 다 순회하고도 원인을 찾지 못하셨다. 어떤 병원에서는 충수를 떼보자고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맹장수술을 예전에 하셨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병원들을 전전하느라, 엄마는 집을 한채 팔아야 했다고 말씀하신다. 그 때는 아직 의료보험이 전국민으로 확산되기 전이었던 시기였나보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고 있는 한 미국인은 어느날 극심한 복통에 병원을 찾으니 담낭결석이라고 했다. 그런데 보험이 없어서 수술을 해주는 병원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려서 진통제를 먹으면서 참아야 한다고 했다. 보험은 왜 안 들었는지 물으니,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보험제도가 아니라서 비정규직인 자신이 민간보험을 가입하려면 매우 돈이 많이 든다 했다.

 나는 의료보험제도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딱 위 2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반면, 5년전 내가 복통으로 고생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나는 모 대학병원에서 간편하게 그리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 덕이다. 이러니 내가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를 나쁘다고 할 수가 없다.

 

  물론 작은 불만은 있다. 병원에 가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의사 진료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 궁금한 점이라도 물어볼라치면, 어느새 다음환자를 부르는 의사. 단순한 서운함과는 별개로 이러한 짧은 진료시간에는 문제가 분명히 있었다. 당시 복통으로 3일간 동네 내과를 방문했음에도 ‘충수돌기염’을 진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충수돌기염’은 심각한 질병은 아니지만,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되는 병이다. 그래서 병원에서도 응급으로 수술하는 질병이다. 나는 결국 농양이 충수돌기를 뚫고 주변 장막에 들러붙어 대장과 소장을 일부 절제했다. 그 뒤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 의사 개인 역량의 문제일까? 아니면 시스템의 문제일까? 

 물론 이 둘을 딱 잘라서 어느 한쪽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분명히 시스템의 문제도 큰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제대로 진료하고 싶어도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진료를 해야 하는 시스템은 단지 의사 개인이 원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환자의 입장에서 경험을 얘기했지만, 분명 의사들의 불만도 있다. 그 이유를 사실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내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한국 의료계의 문제점들을 풍부한 자료와 근거를 통해 논리적으로 제시한 이 책을 통해 물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저자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와 관련해서 역사적으로는 어떠했고, 어떤 문제 때문에 제도가 이러이러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현재에는 이런 문제가 계속 남아있다는 것들을 상당히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왜 의사들이 5분만에 환자를 보는 시스템이 형성되었는지, 의약분업때 그렇게 반발이 많았는지, 당사자가 아니었던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이 책을 매우 잘 설명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뭐 굳이 내가 이런 제도까지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예비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내가 속한 분야의 관련 제도와 법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한 제도를 알아갈 때, 왜 그런 제도와 법이 형성되었는지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환자에게 어떤 병이 생겼을 때 그리고 그에 대해 어떤 치료를 하게 될때, 환자는 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어할텐데. 이 때 정확한 과학적인 분석과 근거를 기반으로 한 논리적인 설명을 하게 될때 환자는 그 병과 치료이유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치료의 협조도가 높아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제도 또한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제도 하나하나가 생기고 수정되는 과정, 그리고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할 때 그 제도에 대해 더욱 심층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주로 설명하고 있는 의료보험제도와 의약계에 있었던 갈등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 어떤 장점이 있으며, 어떤 보완점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제도가 걸어온 과정을 알아야 한다.

  제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낸 것과 별개로 책에 있는 한 문장이 깊게 마음 속에 남았다. “현대의학은 치료(cure)에 집착하느라 돌봄(care)에는 무신경했다.”는 말. 의료기술이 늘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질병을 치료해야지 그만큼 비용을 청구할 수 있어서, 결국 환자를 보지 않고, 그 질병의 치료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말. 우리가 보듬어야 하는 대상은 질병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아닐런지. 즉, 질병을 치료함으로써 환자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훌륭한 의사들은 그렇겠지만, 질병을 치료함에 있어 환자를 무시하거나 호통치거나 그런 의사들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인지, 병을 치료하고도 좋지 않은 기분으로 병원을 나서는 환자도 있고, 의사가 그렇다는 것을 아니까 환자들도 의사를 예전만큼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병원도 한군데만 가지않고, 여기저기 가서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결국 이러한 상호간의 불신은 불필요한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테고, 사회적으로도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부제목인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단지 치료에만 집중하고 환자인 자신을 신경써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의사는 제대로 된 진료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시스템 때문에 화가 날 것이다. 결국 의료와 관련된 문제들은 결국 제대로 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제도는 최대한 이해관계에 얽힌 계층을 최대한 만족시켜주도록 정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계층간의 양보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이러한 제도는 무엇때문에 있는 것인지, 무엇때문에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를 개개인의 이득이 아닌, 의료행위의 본질에서부터 찾아나간다면, 보다 현명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사회의 병원은 단지 질병을 cure하는 공간이 아닌, 환자를 care하는 공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글 : 김남진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3학년>

필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한 후 늦은 나이에 치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왔다. 늦은 만큼 사회경험 또한 적지 않은데, 봉사나 배낭 여행 혹은 출장을 통해 세계엔 아직도 의료사각지대가 많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치과의사가 되면, 이런 의료사각지대의 이웃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할 계획이다. 일차적으로는 환자의 몸을 치료하겠지만,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