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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보르도 와이너리 나들이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65>

쌩뽀쌩마...

대체 무슨 주문일까요? 저희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다닐 때까지 외우는 것이 하도 많아서 이젠 첫글자를 따서 외우는 버릇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역대 왕의 순서, 금속의 이온화 서열, 주기율표, 12개의 두개신경(cranial nerves).... 지금도 머리를 툭 치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렇다면 '쌩뽀쌩마'?

생 떼스테프, 뽀이약, 생 줄리앙, 마고의 앞글자입니다. 이 순서가 지롱드 강 하류에서부터의 와인지역 이름인데, 보르도 시에서 이 동네로 간다면 결국 마고, 생 줄리앙, 뽀이약, 생 떼스테프 순서로 나타나게 되겠지요.

클래식에 입문을 하면 대개 모차르트부터 시작합니다. 귀에 익은 멜로디들도 많고, 단순 반복도 있으며 무엇보다 흥겹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바하와 베토벤은 대개 두세 번째로 빠져듭니다. 그 뒤부터는 자기 마음대로 나다니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겁도 없이 현대음악까지 듣기도 합니다만, 어느 정도 클래식의 고수가 되면 다시 모차르트, 바하, 베토벤으로 돌아온다고들 합니다. 다만 연주자를 달리하며 심도 있게 듣는 것이죠.

 

바하의 경우엔 초심자들은 브란덴부르그 협주곡 같이 귀에 착착 감기는 곡을 좋아하다가, 점점 묵직한 종교음악이나 무곡으로 이동을 합니다. 물론 그 이동 과정에서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브람스, 슈베르트, 바그너.... 그러다 다시 조강지처작곡가로 귀환을 하는 것이 대개의 코스라고들 하더군요.

와인이라고 별반 다르겠습니까  

요즘은 대형 마트에 가면 칠레, 호주, 스페인, 남아공 등과 같은 신세계에서 온 저렴한 와인들이 넘쳐 납니다. 처음 시작을 이런 와인으로 해도 좋지만, 아무래도 피아노를 배우려면 처음부터 째즈 피아노가 아닌 바이엘로 교습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프랑스 보르도의 메독 와인으로 시작하는 것이 '혀의 표준화'를 위해서 좋을 듯합니다.

 

왜 보르도 와인이 중요하냐 하면, 일단 메독 지방의 와인은 가장 기본적적인 포도품종인 카버네 소비뇽 중심으로 와인을 만들기 때문이겠죠. 뽐므롤이나 생 떼밀리옹 등지에서는 메를로가 많지만, 여하튼 메이저 두 품종과 카버네 프랑, 쁘띠 베르도...와 같은 기본적 와인 향을 인지해야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쉽습니다. 게다가 AOC로 통칭되는 와인 등급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 와인처럼 동네마다 혹은 집안마다 제 멋대로인 경우가 없어서 실수가 적습니다. 등급체계가 제대로 잡혔다는 말은 와인의 가격과 와인의 맛이 대체로 비례한다는 말과도 동의어입니다. 각종 포털을 검색해보면 와인의 소비자 가격도 친절히 나와 있기 때문에 결국 와인을 살 때 바가지를 쓸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겠고요.

 

거기에 비해 부르고뉴 와인은 음악가로 치면, 바그너나 무소르그스키 혹은 우리나라의 윤이상이나 진은숙처럼 조금 난해합니다. 맛에 조금 더 욕심을 내면 와인 값은 세제곱, 네제곱으로 널뛰기를 하고요. 결국 한 병에 수십, 수백만 원을 지를 수 있는 거부가 아닌 다음에야 부르고뉴는 초대받은 와인 파티 때나 찔끔 맛을 볼 뿐입니다.

 

와이너리 투어는 메독지방 중에서도 오메독(높은 지역, 상류지역을 뜻함)이 핵심입니다. 보르도 시에서 출발하면 먼저 마고가 나오고, 생 줄리앙, 뽀이약, 생 떼스테프 순서로 등장합니다.

길도 무척 아름답고, 조용한 시골길이라 더욱 운치가 있습니다. 제주도처럼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녀도 좋겠지만, 음주운전이 문제군요. 각 와이너리마다 한 잔씩만 걸쳐도 바로 면허취소입니다.

좋은 와이너리일수록 웬만한 방문객이 아니면 오픈을 하지 않습니다. 2~5등급 사이 샤또들도 미리 예약을 받는 경우가 많고요. 저희는 한국에서 온 귀족가문들이라고 사기를 쳤기 때문에, 상당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역시 있는 집은 다릅니다. 샤또 마고 성 앞길은 가로수부터 돈 있는 티를 냅니다.

삐숑 롱그빌네 집안은 가계도가 좀 복잡합니다.

 꿈의 라뚜르입니다. 김정일이 원샷으로 마셨다고 해서 김정일 와인이라고도 하지요.

멀리 라뚜르의 아이콘인 탑이 보입니다. 그 너머 지롱드 강도 보이고요.

 

라피트 로칠드 성입니다.

린슈 바쥬에서 와인시음을 위해 만든 건물입니다.

 와인을 사이즈 별로 나열해두었습니다.

 시음인지 음주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샤또 팔메입니다.

샤또 삐숑 롱그빌 바롱이고요

조그만 마을을 지나가는데 샤스 스플린가는 길 안내판이 보입니다. 평소 책에서만 보던 유명 와이너리들도 이곳에 오니 너무 흔하게 보이니 조금 그렇습니다. 미스코리아 뽑는 대회 구경 갔다가 잔뜩 눈만 높아진 것처럼 말이죠.

 

생 떼밀리옹의 한 샤또입니다. 실제 거주는 다른데서 하고, 성의 겉만 그럴듯하게 유지한 채, 속은 텅 비어있는 샤또도 많습니다.

 르 팽입니다. 불어로 소나무가 팽인데 말 그대로 소나무 두 그루가 서있군요. 뽐므롤의 보석이죠.

 

 ! 진짜 슈발 블랑(백마)이 멀리 보입니다.

무똥 로칠드입니다.

샤또 레방질입니다. 라피트 로칠드가 소유하고 있는데 가끔 로버트 파커 100점짜리도 나옵니다.

 

대개 보르도의 오크 1배럴은 225L입니다. 그렇다면 750ml로 나누면 300병이 나오는군요.

한 통만 챙기면 평생 린슈 바쥬 마시면서 살 수 있겠지요?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