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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숙 칼럼

아쉬운 이별

[황윤숙의 깨알 줍기] - <3>

 

 

오래된 노란우산 하나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와 햇볕을 함께 막아주는 우산양산 겸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필자가 이렇게 과거형으로 기술하는 것은 이제 나를 떠난 추억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10여년도 더 된 시간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아주 가볍고, 작은 부피라 여행 시는 항상 내 소지품이었다. 작은 우산은 잊어버리기 쉬운데 이상하게도 오래 간직하였으며, 특히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지역이나 햇볕이 강한 곳의 여행에는 필수품이었고 내 사진의 모델들이 자주 소품으로 이용하는 물건이었다. 내가 활용해야 할 우산이 내 사진 속에 주로 담긴 이유는 사진을 취미로 하다 보니 우산이나 선글라스 그리고 차양이 있는 모자 등은 불편한 물건인지라 여행 시 배낭 속에 항상 지니고 다니다 지인들에게 빌려 주는 물건이었다. 특히 색이 밝아 사진 속에서 아주 예쁘게 표현되는지라 지인들이 즐겨 찾는 소품이었다. 그런 연유로 딱히 누구의 소유랄 것 없이 내가 가지고 가서 나누어 쓰는 모두에게 사랑 받던 물건이었다.

 

지난 봄 제주도로 졸업 여행을 갔다. 외돌개에서 시작하여 올레길 7번 코스는 경관도 좋고 걷기도 편안한 길이라 졸업여행 중 일정에 포함되어 학생들과 조용히 걷고 대화를 나누는 조용한 길이었다. 제주도 날씨는 예측이 어렵기에 항상 지니던 노란우산과 우비를 챙겼다. 예측은 빗나지 않았고 고사리 장마라 불리는 4월 말의 제주는 비와 바람이 몰아치는 여행길이었다.

외돌개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점 바람이 더해져 거세졌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듯이 벼랑 아래 파도는 비와 바람이 만들어 주는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 우비를 입고 카메라를 위해 우산까지 썼다. 강한 바람에 우산이 뒤집혀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비를 막아 보고자 안간힘을 쓰며 그 사이 사이에 사진을 찍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파도치는 벼랑아래 한 장면을 담기 위해 잠시 우산을 손에서 내려놓는 순간 바람이 몰아쳐 내 노랑우산은 벼랑 아래로 마치 춤추듯 날아갔다. 마치 메리포핀스의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우산 한 장면처럼 너울거리면서 바다로 바다로...

보통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손에 잡힐 듯 눈앞에서 사라질 때 아쉬움에 안타까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난 벼랑 아래로 바람에 몸을 맞기고 춤을 추면서 멀어져 가는 우산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아름다운 춤을 보는 듯 했다. 노란 우산은 바람에 몸을 맞기며 춤추듯 자유롭게 내 곁에서 멀어져 갔다.

분명 내 소유였고, 아끼는 물건이었는데 물건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마음 편했던 경험은 처음이었다. 마치 우산이 자유를 찾은 것 같아 행복한 마음까지 들었다. 참 이상했다. 우산을 그렇게 보내고 걷던 7번 올레길에서 버려져 비를 맞고 있는 노오란 낑깡 하나를 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올레길을 걷던 누군가가 떨어 뜨렸고 단지 떨어 졌단 이유로 흠집하나 없는 성한 물건을 버리고 갔다. 그리고 지켜보며 생각에 잠긴 순간 지나던 50대의 남자가 마치 자신이 공을 찰 때 얼마나 적중을 잘하는가를 작은 낑깡 한 알로 시험하듯 새차게 발길질해 바다로 날려 버렸다. 내가 관찰 중인데도 불구하고....

노란 우산도 노오란 낑깡도 바다로 떨어졌다. 하나는 충분히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사랑 받고 잊혀진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을 얻은 모습으로 떠났고 하나는 버려졌고 또 누군가에 의해 멀리 내동댕이쳐졌다.

 

가만히 내가 가진 것들, 그리고 주변인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헤어짐이 아쉬우면서도 추억과 허전함으로 남아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아름다운 것이 있고, 버려진 뒤 기억조차 나지 않고 아쉽지 않은 사라짐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들...

 

바람이 불면 제주 바다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몸놀림을 떠 올리며 이제 내게 무엇이 사라진다 해도 그때의 경험 속에 얻은 자유로움으로 위안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버려 지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자유로움으로...

 

 

 

 

: 황윤숙

한양여자대학교 치위생과 교수

충치예방연구회 운영 위원

국민구강건강을 위한 치과위생사 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