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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휘파람 사나이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61>


 

  4월은 과연 잔인한 달인가?  세월 호에 이어 한 기업인의 자살이 대한민국 호를 뒤흔들며 국민의 아픈 가슴을 다시 헤집고 있다.  우리 민도와 기업풍토와 정치에 열패감을 재확인하는 아픔이다.  마당발 인맥과 정경유착을 통하여 독학에 맨몸으로 대기업을 일구었다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이야기... 

 지난 4월 9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성완종 회장의 성공과 실패는, 1997년 IMF를 불러온 한보철강 정태수 회장과 판박이다.  다른 점은 정 회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하여 뇌물 준 정치인 이름과 내용에 끝까지 비밀을 지킨 의리(?)의 사나이였다.  심재륜 부장의 솜씨에 잠시 흔들렸지만 곧 다시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성 회장은 정반대로 갔다. 

 자살 직전 언론과 인터뷰하고, 주머니에 여권 실세 이름과 돈 액수가 적힌 메모를 넣은 채 핸드폰을 열어놓아, 위치를 알린 똑 떨어지는 고발이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고자질은 ‘나쁜 짓’으로 배웠고, 소설이나 회화에 등장하는 밀고자(informer)를 속어로 휘파람 또는 피리 부는 사나이(Whistler)라 하니, 서구에서도 별로인 모양이다. 

좀처럼 밝히기 힘든 조직비리의 내부고발이나 범행을 미리 불어 감형 받는 플리바겐, 담합을 먼저 신고하여 나 홀로 과징금을 면제받는 기업도 있다.  이런 고발을 사회정의를 위한 용감한 선택이라고 하는데, 때로는 영리적·이기적인 행위로 의심받기도 하는 일종의 필요악이라 하겠다.
    
   또 다른 점 하나는 자살이다.  서구에서는 피의자가 자살하면 “범죄의 자백” 쯤으로 본다.  최소한 자신을 살해하는 그 순간만은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라고 한다.

 반대로 우리는 죽음 앞에 감성과잉이다.  온정주의는“오죽 분하고 억울하면 스스로 목을 맸을까?”하며 심적으로 망인을 사면하는데, 엄밀히 따져서 분한 것은 yes지만 억울한 것은 대부분 maybe다. 

“화병의 나라”답게 온 국민이(?)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탓인지, TV 막장드라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점점 더 상식과 개연성을 벗어나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악인의 대사는 흔히, “내 혼자서는 못 죽는다.  물귀신처럼 몽땅 끌고 들어가야지” 한다.  털끝만한 신뢰나 의리를 찾기 어렵고, 기업경영을 “로비와 뇌물과 비리의 기술”로 착각한다.  녹취록을 만들어 찌라시 수준의 메모나 리스트에 신빙성을 높이고, 일방적인 계획에 불과한 일정표는 다이어리로 둔갑한다. 

다음은 보험과 배신을 따져보자.  보험의 기본은 위험분산인데, 여기에 금융기법을 추가하여 만기에 목돈 찾는 적금 식 보험도 있다.  “정경유착보험”에 가입하면, 높기만 하던 은행문턱이 하이패스요, 콧대 높던 실무공무원은 고분고분해지며, 으르렁대던 경쟁회사가 알아서 긴다.  웬만한 형사나 국세청 문제까지 만사가 땅 짚고 헤엄치기다. 

행복한 동행은 거기까지다.  엄격해진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은 본래 ‘비 보험’이다.  선출직에게 이것까지 보험처리 해 달라는 요구는 나대신 목숨 내놓으라는 협박이다.  두 전 대통령에게 소급하여 수갑을 채운 전례도 있다.  적금 식 보험으로 혼동하여 목돈까지 바란다면 계약한도 초과에 무한책임 요구다.  불행의 씨앗은 정경유착 비리라는 ‘악마와의 계약’이었고, 끝내 누군가를 겨냥한 기획수사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돈 드는 정치 거액의 후원금도 문제지만, 기업가 겸 정치인의 일인이역까지 한 분이, “나는 희생자 너는 배신자”라며‘남의 탓’으로 몰아가는 것은 막장이다.  “죽음으로 고발 한다”는 선정성을 감안해도, 온 나라가 냄비처럼 들끓어서는 안 된다.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인 고발은 늘 보는 인지(認知)사건에 불과하니, 철저히 수사·처리하면 그뿐이다. 

 엽기적인 행동에 덩달아 흥분하면, 앞으로도 극단적인 선택만을 조장하여 국민의 정신적·경제적 부담은 커지고, 내일을 위한 제도개선이나 개혁은 물 건너간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