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임철중 칼럼

숨고르기 3: 다시 흥남, 그리고 재도약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60>

 

   1950년 12월 16일 흥남부두.  제10군단 아몬드 육군소장이 선택한 승선(乘船) 순위 1번은 미 해병 제1사단이었다.  그 의미를 새겨보자.  첫째, 심각한 타격을 입은‘병동(病棟)사단’에 대한 응급 배려다.  사상자가 70%에 가깝고, 생존자 반 이상은 심한 동상환자였다.  둘째, 유공자 예우다.  해병사단 12,000 명을 격멸하려고, 중공군 제9병단은 장진호 전투에 7개 사단 12만을 투입하였다. 

제1사단은 후퇴하면서 17일간 중공군의 발을 묶어놓아(tie-down), 동북지역 국군과 UN군 10만이 흥남으로 집결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중공군은 사상자 45,000명으로 아군의 6배에 달하는 피해를 입어(공군의 폭격과 해군 함포사격의 도움) 3차 공세에 합류하지 못하고, 적군의 진격은 수원 선에서 멈추었다.  결국 아몬드 장군은 영웅의 값비싼 희생에 ‘마땅한 예우’를 해준 것이다. 

 

   짧은(3년, 월남전 9년) 국지전에서 미국은 36,576명의 꽃다운 젊은이를 잃었다.(전사자를 54,000명으로 집계한 보도가 더 많다.)  트루먼의 결단과 UN의 참전결의는 빠르고 추상같았으나, 막대한 희생과 매카시즘에 대한 반동으로, 아이젠하워 후보의 종전(終戰)공약이 대세가 되었다.  반전(反戰)의 흐름 속에, 승리 아닌 휴전은 한국전이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잊혀 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평가절하당하는 빌미가 되었다. 

케네디에게 걸었던 기대는 암살로 깨어지고, 월남전 참패에 이은 닉슨 하야의 수모와, 이에 대한 반동으로 집권한 도덕군자(평생 한 번도 거짓말 한 적이 없다며 많은 사람을 웃김) 카터의 실정(失政)...  이차대전 이후 세계 경찰을 자처한 USA는 많은 시행착오를 저질렀고,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은 새 희망의 불씨였다.  희망의 분위기에서 미 해병 1사단 생존자들은 ‘Chosin Few’라는 단체를 결성하였다.  단체결성과 대한민국 “이산가족 찾기” 이벤트가 1983년 같은 해에 일어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전후 30년 동안 개인숭배-공산독재 하의 북한에서 일어난 끝없는 인성의 추락과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성공에 대한 남북한 종합 재평가인 동시에, 그동안 숙성된 미 참전용사들의 자존심 회복이요 ‘숨고르기’였다.

 

   대전역이 지척인 칼국수·풀빵·냉차의 거리는, 밤이면 윤락과 값싼 여인숙의 거리로 변하여, ‘중동 10번지’라는 부끄러운 별명을 얻었다.  이 또한 전쟁으로 극한상황에 몰린 딸과 언니의 생존현장이요, 해방 전 일제의 유곽(遊廓)과 양조장이 있던 이 지역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차츰 나라형편이 피면서 아담한 일식집과 건재약국과 인쇄소가 들어서 호황을 누린다. 

추위와 굶주림에서 벗어나자 시민은 4·19의거 20여년 만에 당당하게 변화를 요구하고, 5공은 이에 굴복하여 제6공화국이 탄생한다.  1983년의 숨고르기는 ‘1987 체제’의 정착으로 열매를 맺고, 대한민국은 경제와 민주화의 신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로 기록된다.  대전에 신도심이 개발되고 상권이 이동하자 약전(藥廛)과 문화(인쇄)의 거리는 다시 한산해졌다. 

 저물가·저성장·저고용의 세계적인 불황 속에, 무역으로 꾸려가는 대한민국 경제의 탈출구 찾기도 시급해졌다.  재도약을 위하여‘다시 한 번’ 숨고르기를 하자. 

 ‘인정과 신뢰’가 문화강국의 시민권이요 탈출구를 열어줄 사회적 자본임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87체제도 어언 30년이 다되어간다.  격변의 시대를 지나며 우리사회의 고질병으로 뿌리내린 상대방 헐뜯기와 불신을 치유하기 위하여, 서로서로 인정하고 신뢰하며 예우하기로부터 시작하자.  그래야만 리더가 성장하고 영웅이 탄생하며 우리사회가 한 단계 더 올라서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