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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무·정책

최남섭 협회장의 '일의 기쁨과 슬픔'

[신춘기획] 대한민국에서 치과의사협회장으로 산다는 것

그해 4월은 참으로 대단했다. 긴 여정을 마친 세 명의 후보들이 마지막 힘을 모아 선거인단들 앞에 섰고, 그 결전에서 최남섭 후보가 승리했다.

그 날의 기쁨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공식행사를 끝낸 뒤 지지자들을 만난 당선자는 ‘협회장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그동안 많이 듣고, 많이 생각했다’며, ‘가능한 한 빨리 회무수행 체제를 갖추겠다’고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치과의사회관 3층 협회장실을 차지한지 10개월이 지났다. 그는 과연 오랜 기간 고민하고 구상해온 것들을 실제 회무에 구현해 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최 협회장의 임기는 시작부터가 순조롭지 않았다. 전임 집행부가 치른 전쟁의 상흔은 생각보다 깊었고, 이를 치유하는 작업이 순전히 새 집행부의 몫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임원 선임을 끝내고 집행부가 막 일을 손에 익힐 무렵 주간조선이 6월 2일자 커버 기사로 치과의사협회와 야당 의원들간의 입법 커넥션 의혹을 제기했다. 물론 치협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펄쩍 뛰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이번엔(7월 11일) 어버이연합이란 보수단체가 1인1개소법 입법로비 혐의를 들어 야당의원 11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고 말았다. 출범한지 2개월이 지났을 뿐인 최남섭 집행부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이후 검찰은 본격적으로 치협을 압박하기 시작하더니 10월말엔 기습적으로 치협 사무처와 임직원 자택 등 6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TV카메라가 치협 앞마당을 점령한 가운데 검찰은 이날 온종일 사무처를 뒤져 관련 서류들을 박스에 실어 날랐다.

압수수색은 이를테면 공개수사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수사방향을 잡은 검찰은 직원이든 임원이든 가리지 않고 참고인들을 불러 젖혔다. 정상적인 회무가 불가능할 것은 당연했다.

급기야 김세영 전 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치협은 당장 이를 막는데 총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직전 회장이 수감되는 사태는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치협은 본 게임에 들기도 전에 이미 적지 않은 데미지를 입고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최남섭 협회장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걱정이라기보다 측은지심의 발동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어렵게 협회장이 된 그를 기다린 것은 ‘무조건 막고 봐야 하는 노아웃 만루 상황의 구원투수’ 같은 역할이었다.    

최 협회장도 ‘이 때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고백했다. 협의가 아니라 조사를 받은 입장에서 뭘 주도적으로 해낼 처지는 더더욱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원칙은 분명했다. ‘전직이건 현직이건 문제를 철저히 개인의 것으로 가져간다’는 것. 그는 이 일에 치협이 직접적으로 연루되는 상황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했다.

그럼 이외의 부문에선 어떨까? 협회장의 생각대로 지금 회무는 잘 굴러가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협회장의 대답은 이랬다.

“집행부가 너무 움직임이 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난 원래 뭐든 조용히 처리하는 스타일이에요. 보여주기보다 결과를 얻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문의 경과조치 문제나 의기법은 물론 기업형 사무장치과 문제에서도 지난 집행부의 정보를 활용해 나름대로 잘 대처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의기법 문제는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미봉보다는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각오인데요. 이런 문제들은 결과가 나오는 대로 언제든 회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생각입니다.”

 

 

누가 뭐래도 회무는 이어진다

 

협회장의 추측대로 ‘요즘 치협이 뭘 하는질 모르겠다’고 대놓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이들 눈엔 집행부가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자잘하게 보인다. 뭔가 큰 것, 이를테면 목소리를 높여 반박하고, 시위를 하고, 그래서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국회를 움직여 새로운 법을 만들고, 때론 사법당국에 고소조차 서슴지 않아야 뭘 하나 보다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행부가, 그 중에서도 협회장이 꼭 수행해야 하는 일들 중엔 의외로 자잘한 것들이 많다. 가령 출근을 해서 각 부서장들의 보고를 받고 결제를 하다 보면 한번이라도 읽어야 할 페이퍼만도 분량이 적지 않다. 점심시간엔 근처 식당을 찾아 주로 간부들과 대화를 나누고, 오후엔 대부분 외부 일정을 소화한다. 만나야 할 사람, 참석해야 할 모임들이 늘 그를 기다리기 때문인데, 게 중에는 현안해결을 위해 복지부나 국회를 방문하는 일도, 언론기관을 상대하는 일도, 의약계 단체장들과의 유대를 위한 모임도 있다. 일정을 끝낸 뒤 잠시 협회로 복귀하기도 하지만 저녁엔 또 대부분 약속들이 잡혀 있다.

협회장에겐 이런 일들이 하나하나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며, 그렇게 동분서주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버린다. 대신 회원들이 말하는 소위 ‘하는 일’에 해당할만한 사업들은 대부분 내부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요즘 집행부가 가장 공을 들이는 사업은 아시다시피 ‘우리동네 좋은치과’와 ‘시니어 오블리주’ 캠페인이다. 최남섭 협회장은 시니어 오블리주를 통한 젊은 치과의사 지원사업에 특히 애정을 갖고 있는데, 이 일은 현재 관련 위원회들이 합동 위원회를 구성해 지원의 대상과 방향 그리고 방법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협회장은 개인적으론 치과대학이나 치전원을 마친 새내기 치과의사들에게 개원가 진입 전 단계에 필요한 임상교육을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젊은 치과의사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조직이 이 일을 수행해 내는데 최적화 된 상태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집행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무처의 경우 분야별 전문지식을 갖춘 직원들이 갈수록 더 필요해지지만 인력은 늘 부족한 상태. 최남섭 협회장은 가용 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지난해 10월의 1차 개편에 이어 대의원총회를 끝낸 오는 5월경에 한차례 더 사무처 조직개편을 단행할 예정이다.

예산의 문제도 늘 최남섭 집행부의 발목을 잡아왔다. 100% 회비수입을 기반으로 짜인 예산안에 따라 납부율 70%의 실제 예산을 무리 없이 집행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구나 유디 문제로 방어적인 소송이 빈발하면서 법무비용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자칫 유동성 위기를 걱정할 처지에 이르러서야 협회장은 하는 수없이 지부장협의회에 도움을 청했고, 그 결과가 바로 운영기금 탕감과 법무비용을 위한 별도회계 신설로 나타났다. 물론 대의원총회 통과를 전제한 것이긴 하지만, 최남섭 협회장은 이 조치만으로도 일단 크게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머지않아 가시적 성과 보여드릴 것

 

상황은 이렇듯 여러 가지로 쉽지가 않다. 여기에 유디의 30억원 손배소까지 새로운 암초로 떠올랐다. 때문에 치과계라는 큰 함선이 지향점을 향해 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승선원 모두가 힘을 모을 때 모아 한꺼번에 파도를 밀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집행부 내에서조차 그런 단합된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더구나 주변 단체들은 사사건건 협회장의 일에 딴지를 걸고 나선다.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치과계가 정치판이 아닌 이상 협회장을 조롱하고 집행부를 비난해서 얻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설사 정치를 하기로 작정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런 태도가 표가 되리라곤 절대 생각지 않는다. 어느 한쪽이 모자라면 끌고라도 가야 하는 것이 치과계이므로, 어려움이 닥쳤을 땐 생각을 공유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줄 수 있어야 평소의 ‘아옹다옹’이 아름다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최남섭 협회장은 가끔 자신의 스타일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기도 한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평소에 살갑게 대하려고 노력을 합니다만, 상대가 느끼기엔 아직 부족한 게 있지 않나 싶어요. 하지만 성격이 그래서 그렇지 나름대로는 친화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 같이 않게 주위에 어려운 사람으로 비춰지는 게 난들 좋을 리가 있겠어요?”

-그렇게 비춰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글쎄, 술은 안하지만 술자리를 피하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그게 이유가 될 리는 없고, 아마 내 화법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반성도 많이 합니다. 하하”

 

협회장에 당선이 된 후 그는 서둘러 서초동 최남섭치과를 매각했다. 회원들의 회비에서 급료를 받으면서 개인 치과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걸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년 뒤 개원의로 되돌아가기 위해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또한 그로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협회장 연봉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걸 지금 따지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보다 '협회장을 꿈꿀 때 구상했던 많은 것들을 정작 협회장이 돼서는 실행에 옮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그는 조심스레 내비췄다.

최남섭 협회장은 그러나 회원들에겐 “현재의 어려운 상황이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집행부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반드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