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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숙 칼럼

'일상의 고소함을 함께 나눴으면..'

황윤숙의 깨알 줍기- <1>

 

  얼마 전 명절음식 준비하던 중 커다란 그릇에 가득담긴 육전 재료를 보고 딸아이가 겁먹은 소리로 속삭인다. “엄마 이거 언제 다해요?” 딸아이 관점에서 이게 엄청 많은가 보다. 난 담담하게 얼른 끝날걸? 얼마 안되는데?”라고 말하며 나도 딸아이만한 시절 아니 그보다 더 훨씬 이전에 이런 일들에 대해 겁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나보니 내게도 어린 시절 어머님이 주신 과제 중에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거 같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 콩나물 다듬기였고, 중간 멸치 손질 하는 과제였다. 어머님께서 쟁반 수북이 쌓인 콩나물을 주시면 그게 얼마나 많고 해도 해도 줄지도 않는지, 멸치는 왜 그리 비릿내가 나는지, 그리고 그럴 땐 꼭 때 맞춰 얼굴이랑 몸은 가려운 곳이 자꾸 생겨 몸을 비틀고 언니를 불러 이곳저곳 긁어달라고 부탁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했던 기억들이 있다.

 

일상의 일들이 이렇게 커 보이던 시절 1년 가까이를 외가댁에서 보내면서 외할머님은 호기심과 의문이 많은 나에게 여러 가지로 연구대상이었다. 내가 뭔가 이야기만 하면 척척 해결해 주시는 것이 마치 마술사 같았다. 그 중 하나가 깨에 대한 내 의문이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 할머니는 수확한 깨를 마당 한켠에 서로 기대가 세워서 비가 오면 덮어주고 혹여 기울어질까 신경 쓰며 볕이 잘 드는 곳에 말리셨다. 마당에서 자치기를 하던 내가 혹여 깨를 쓰러트리면 근처에 가지 말라고 나무라시면서... 그땐 정말 궁금했다 저것이 뭘까? 뭐 길래 평소 꾸지람 안하시는 할머님이 저리 신중하게 관리 하실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멍석이 깔리고 평소와는 달리 그 위에 뭐가 한 장 더 펼쳐지고 할머니는 소중한 다발들은 그 위에서 털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라는 것을 처음(아니 처음은 아니겠지만 내 인식 속에 기억으로 처음 남았다) 보았다. 얼마나 자그마한 것들이 털어 낼 때 마다 나오는지. 할머니는 그 자그마한 것들을 한 알이라도 버릴까봐 부드러운 비로 쓸어 담고 소중히 모으셨다.

그리고 얼마 뒤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가서 기계 속에 깨를 넣고 위에서 묵직한 쇳덩어리가 눌러지고 아주 조금씩 정말 쥐어짠다는 표현에 딱 알맞게 깨에서 기름이 나오고 주인장은 작은 붓으로 그 기름들을 한곳으로 쓸어주면서 깔때기를 입에 꽂은 작은 병속으로 고소한 기름이 모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지금이야 신기한 경험처럼 이야기 했지만 어린 내게 그 시간은 얼마나 지루했던지... 

작은 알갱이들을 털어내어 모으기도 힘들지만 그 작은 알갱이 속에 그런 고소함이 있다는 것이 성인이 된 지금도 참 신기하다. 그리고 그 작은 알갱이 속의 기름을 짜내서 한 병을 채우는 작업들도 말이다.

이제 그런 정성이 담기 깨알줍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 주변의 일상 중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이야기들을 찾고 그 안에 담겨진 큰 의미를 밖으로 끌어내어 고소함을 시도를 해 보고자 한다. 어쩜 이야기는 우리가 언제쯤 겪었던 일들이며, 독자들의 일상의 이야기이다. 다만 필자가 그것을 활자화하여 함께 공유하는 공간으로 꾸며 가보고자 한다.

깨는 음식의 모양을 좋게 하기 위해 완성된 음식 위에 얹는 것도 중요하지만 으깨졌을 때 비로소 고소한 맛이 난다. 온전함이 아님 깨진 모양 속 고소함을 찾는 일 그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 황윤숙

한양여자대학교 치위생과 교수

충치예방연구회 운영 위원

가칭)국민구강건강을 위한 치과위생사 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