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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문화는 생활 1: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53>

 

   치과대학 교양과정인 예과에서 ‘세계문화사’를 만났다.  고교시절 사건·인명·연대를 달달 외운 세계사가, 지나간 인류사회 사실(Fact)의 나열이라면, 그 시대 문화를 읽는 인문학단계로 격상된 것이 문화사다.  사전을 보면 ‘문명’은 “사회의 기술적·물질적 발전에 의하여 인간의 생활이 발달한 상태”요, ‘문화’는 “인간의 본성인 이상을 실현하려는 활동의 과정 또는 성과, 특히 예술·도덕·종교·제도 등 인간의 내면적·정신적 활동의 소산”으로 정의한다.  문명은 단기에 압축성장이 가능하지만, 문화는 면면히 이어지는 노력과 축적을 요한다. 

또 문화가 앞장서서 문명을 이끌어 갈 때에만 역사는 정의 방향으로 나간다.  세월호와 같이 함량미달 전문직에 의한 대형사고, 땅콩 회항처럼 유치한 재벌 3세 임원, 어장(어쩌다 장관이 된) 수준의 고위공직자가 보여주는 추태 등 무한 재방송되는 국제적인 망신은, 바로 GNP 3만 달러의 문명을 성취했으되 문화는 아직도 3천 달러수준에 머물러 있는, “문화와 문명의 괴리(乖離)”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결론은, “문화의 생활화” 즉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문화시민으로 거듭나야만, 원시적·후진적인 추태나 망신, 비극에 마침표를 찍고, GNP $3만의 벽을 넘어설 것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예상 밖으로 선전하고 있다.  우리민족 최초의(고조선) 노래라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제목으로 쓴 독립영화다.  한 미친 남자가 강에 빠져죽자 아내가 공후를 들고 노래 부르며 뒤따라 자살한다.  뱃사공 곽리자고가 이를 보고 집에 돌아와 전하니, 아내 여옥이 비감해하며 노래를 한다.
“공은 강을 건너지 마오./ 공은 강을 건너려 하네./ 강에 빠져 죽으시니/ 공을 장차 어이하나.”  소설 제목으로 쓰였다.  이처럼 깊은 울림을 주는 노래나 글은, "One source, multi-use." 정도가 아니라, 무한한 텔로미어처럼, 긴 세월을 두고 확대재생산을 거듭한다(telomere; 세포분열을 가능하게 하는 염색체의 말단소립).  유교 경전 사서삼경 중에 시경(詩經)을 삼경의 앞머리에 둔 것은, 공자가 민심파악에 백성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말해준다.  공자가 이상향으로 여긴 주나라 시절 지방민요 160편을 포함, 311편의 고대노래를 모은 것이 시경이니, 서민들의 민요·유행가는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매우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유교경전은 장구한 세월 중국을 이끈 엘리트 공무원을 가르친 텍스트요, 우리도 고려 초기부터 과거제도를 채택하였으니, 역사상 그만큼 성공적으로 운용된 문화도 다시없다.  중국의 ‘죽의 장막’시기에는 찬밥신세였고 문화혁명 때는 박살났지만, 국민이 굶주림에서 해방되고 문화향유 욕구가 상승하자 공자는 자연스럽게 복권되었다.  이제 G2국가로 성장하여 국제무대에 주연으로 부상하자, 미 공보원·알리앙스 프랑세즈·괴테하우스 등 선진국에 필적할 자국문화의 쇼 윈도우로서, 세계 각국에 공자학원을 설립한 것이다. 

먹고살기와 번식이 전부인 삶은 인간의 생활(life)이 아니라 짐승의 생존(existence)에 불과함을 깨달았으니까.  세계 2백여 국가 중에는, 문화까지 독재자에게 몰수당하여 생존에 급급한 북한 같은 나라로부터 문화생활을 보장하는 복지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우리가 현재 스펙트럼의 어디쯤에 와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 그러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지 따져보자.  앞을 가로막는 벽이“문화의 미달” 탓임을 인정하자. “문화는 곧 생활”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려면 문화시민의 자격이 전제되어야 한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대전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