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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소머리부터 소꼬리까지 - 신대방동 ‘등나무집’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54>

예로부터 소라는 동물은 살아서는 사람을 위해 죽도록 일만 하고, 죽어서도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고 갑니다. 그렇게 착한 놈을 신년벽두 대낮부터 먹으려니 께름칙하긴 합디다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 소(한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특별히 한우나 수입육을 따지지 않습니다. 등심과 같은 부위를 좋은 숯에 구워먹을 때는 한우를 선택하지만, 양념을 한다거나 찜, 국 등으로 요리를 할 때는 육우니 혹은 수입육이니를 가리지 않지요. 고소함이나 씹는 질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양념을 해버리면 맛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운데다 합리적이지 못한 가격 차이를 받아들이기 싫어서입니다.

비록 양력 설날이긴 하지만, 그래도 새해이니 첫 술을! 그것도 낮술을 하고 싶은데 뭘 먹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두어 메뉴를 고민하다가 꼬리찜 사진을 보고는 바로 결정을 해버렸지요.

다음은 누구를 불러야 할 지 고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치과대학 동기들이 제일 만만합니다. 삼십여 년 이상을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으니 서로의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해주기 때문이겠죠. 카톡을 보냈더니 넷 중에 셋이나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5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사내들은 거의 뒷방 신세입니다. 집에 있어도 식사 시간 이외에는 찾는 법이 별로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명절이라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집사람도 자기 나름의 스케줄이 있습니다. 혼자 집에 있어봐야 개 용변 치우는 일이나 개 산책 혹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줘야 하니 가장의 꼴이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할 말은 아니지만, 50대 넘어서는 마누라 몰래 몇 천만 원에서 일 억 정도는 꽁쳐둬야남은 20~30년을 친구들끼리 소주라도 한 잔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 치과 치료 오실 때 보디가드 겸 따라 오시거나 기사 역할을 하시는 할아버지를 뵐 때마다 이거 남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아예 지금부터 무릎 꿇고 비굴하게 사느냐 아니면 끝까지 사내 자존심 내세우면서 큰소리 치고 사느냐의 여부는 비자금의 크기에 달렸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꼬리찜 식당의 위치는 동작구 신대방동입니다. 대개의 맛집 블로거들은 강남구나 서초구 아니면 홍대 인근에 주로 몰려다닙니다. 전통의 종로, 중구 그리고 성북구를 찾는 경우는 특별한 예외지요. 그러다보니 관악구, 영등포구, 강북구, 노원구, 성동구, 송파구 등과 같은 외곽 지역은 지방 홀대 못지않은 서글픈 처지입니다. 그러나 음식도 맛있고 짭짤하게 돈을 버는 식당들은 이런 곳에 숨어서영업을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40년이나 된 꼬리찜 전문 '등나무집'에 도착하니 식당 안에 빈자리가 없습니다. 가족끼리, 혹은 할아버지들끼리 모두 꼬리뼈 하나씩 들고 뜯고 있는 모습 또한 장관입니다.

이렇게 잘되는 식당에는 종업원들이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조선족이나 외국인 직원들은 적응하기에 벅찹니다. 우리나라 아주머니들은 일단 몸이 빠릅니다. 외국계 종업원들은 딱 월급만큼만 일하는 경우가 많지요. 대신 우리나라 분들은 조금 불친절하더라도 한 집에서 오랫동안 일하다보니 척척 손이 맞습니다. 직원들이 오래 근무한다는 것은 주인들도 직원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가족처럼 여기기에 가능할 겁니다. 치과 직원들이 이직 없이 오래 근무하는 곳의 공통점이랄 수가 있지요.

원래는 도가니찜과 소꼬리찜만 먹으러 왔는데 양지수육에 소머리수육까지 시켰으니 거반 소 한 마리를 해치웠습니다. 고참 아주머니께 팁을 아주 조금 드렸더니 아주머니가 새해 첫날 첫 팁이라 기분이 좋으신지 주방에서 마구 퍼다 주십니다. 소주도 한 병 그냥 주시고요.(이거 주인이 알면 곤란한데....)

새해 첫날부터 모두가 기분이 좋으니 세상 살맛납니다.

 

대체 등나무가 어디 있을까 찾았더니 이 간판 뒤로 등나무 가지가 무성합니다.

 

5년 차이로 찍은 사진인데 계속 근무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듯합니다. 입구엔 원래 등나무 그늘이 있었는데 그 등나무 위로 비를 막기 위한 차양이 쳐있더군요.

 

1971년 박정희 대통령 신년휘호와 1975년 개업 간판을 보니, 영화 '국제시장' 분위기가 물씬 나지요?

 

 소머리 수육만 국산이라고 하네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맛있으면 그만이지요.

 

 물고 뜯고 씹고... 마치 잇몸치료약 광고 찍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샐러드가 조금 거슬리지만 찬도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서비스로 나오는 국물이 예술입디다. 소금을 넣지 말고 조금 싱겁게 먹어야 육수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알도가니 수육입니다.

 

야들야들한 양지수육입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꼬리찜입니다.

 

꼬리뼈가 신기하죠? 저 꼬리의 힘으로 평생 파리를 쫓아내야죠.

 

소머리 수육입니다. 이렇게 소 한 마리 완성입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