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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칼럼

세상은 넓고 대학은 좁다

[최상묵의 NON TROPPO]-<30>

 

 

우물 안 개구리란 속담이 새삼 실감이 난다. 필자가 대학에 재직하고 있을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막상 대학을 떠나 우물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세상은 넓고 대학은 너무 좁은 공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이란 공간에서 생활할 때는 대학만이 온 우주이며 대학만이 진리가 존재하는 절대적 공간이라는 환각에 빠져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찬 사고 속에서 생활해 오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과 회한이 교차되는 것이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존재하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고 빛과 특권과 즐거움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빛과 즐거움이 온누리에 골고루 퍼져 있음을 알고자하면 빨리 편견으로 물든 안경을 벗어던질 줄도 알아야 하는 건데...

급변하고 있는 의료현실에 대응하는 새로운 개념, 이론, 방법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한국의학교육엔 의학지식과 의료기술만을 고집하는 교육에 집착할 뿐 막상 의료현실에 대한 감각엔 둔감해 있다. 세상에 모든 이론이 현실에 뿌리를 박고 출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아직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꿈의 세계에서 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의학교육 커리큘럼만 보아도 아직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이란 두 큰 기둥을 세워 놓고 조직적이고 획일적인 의학지식 전달에만 몰두하고 있다. 의사로서 사회화 과정을 겪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적 사고를 키워주는 역동적인 의학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의학은 오로지 생명과학만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의학은 생명과학 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하물며 예술까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삶의 영역과 깊이 맞닿아 있는 실행학문이 되어야 한다. 흰 가운을 입고 병원이란 한정된 공간에서만 숨쉬고 있는 제한적인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에서 찾아낼 수 있는 열린 지식을 갖추는 학문의 지식을 갖추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대학 교육은 서구의학 지식을 성경처럼 신봉하면서 아무런 비판적 검토없이 직수입하여 붕어빵처럼 복제하는 것으로 자위를 하고 있으며 의학지식 자체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제기할 줄 모르며 자신들이 일상으로 실행하는 의료행위에 대해 타성에 젖어 있을 뿐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일 즉, 임상이란 말 그대로 환자에 대해 혼신을 다해 애정(compassion)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의술에선 의학지식 이외에 환자들의 이야기(narrative)는 과학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되거나 외면해 버린다. 병원에는 병록 기록은 가득하지만 환자들이 지닌 감정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음이다. 환자들은 진료자의 파트너가 되지 못하고 과학적 의학의 실험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의학교육은 이제 전면적인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학생들이나 전공의 수련 과정에 있어서도 맹목적으로 모법답안으로 신봉되어 온 논문읽기와 세미나 같은 형식적인 방법론적 교육을 탈퇴하고 의사들 각자가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화 하면서 깊은 사유과정을 겪는 정신훈련이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질병의 의미를 문학, 역사, 철학, 음악, 미술,종교, 법률, 과학, 경제 등의 폭넓은 일상생활과 관련하여 탐구하는 폭 넓은 소양을 키우는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즉 의사(Doctor)가 아니라 치유자(Healer)를 만드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현대의학에서 환자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환자를 인격적으로 치유하려는 임상적 노력은 점점 소멸되어가고 있다.

의술은 분명히 과학적이라야 하며 또한 몸을 치유하는 테크닉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인간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지혜 또한 의술에서 간과해선 안될 부분이다. 의학이 다루는 지식의 범위는 과학의 세계에 갇혀 있을 정도로 좁은 세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적 의학에 맹신하는 의사들은 과학적 사고방식 이회의 다양한 치유방식의 적용에 눈을 감으려고 하는 경향은 자신들의 문화권력이 흔들리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의료행위를 단순히 생활의 지혜를 무시하고 텍스트에만 의존하는 경우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는 동떨어진 현실과 유리된 의료 행위의 방식이 되기 쉽고 한편 텍스트를 무시하고 생활의 지혜만을 강조하는 경우는 의학읭 효능성의 기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를 잃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두 가지 명제앞에서 언제나 갈등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명제를 조화롭게 슬기롭게 활용 할 수 있는 현명한 치유자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의사상이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글: 최상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