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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방어는 힘이 세다.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48>

 소설가 김승옥 선생의 작품 중에 '염소는 힘이 세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960년대 고단하고 피폐한 도시 변두리 인생들의 무기력에 관한 내용인 걸로 압니다만,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의 뜻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일종의 나비효과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염소 못지 않게 힘이 센 놈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지금이 제철이라는 방어입니다. 아마도 11월 중순부터는 제주 모슬포로 방어를 즐기기 위해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모여들고 있을 겁니다.

제주 근해에서 잡히는 방어는 여름에는 오호츠크까지 올라가서 먹이활동을 하며 살을 찌우다가 겨울이 되면 산란을 하러 제주까지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회유 코스 중에 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 앞바다를 지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요령부득입니다. 겨울에 모슬포 주변에서 잡히는 방어는 빠른 해류를 이기려고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근육이 찰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근육 사이사이로 기름이 잔뜩 올라 있으니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슬포 항구의 횟집이든 제주 전역의 횟집이든 방어의 크기는 4~50cm 정도로 작습니다. 이를 일본 사람들은 하마찌라고 부릅니다. 물론 양식을 하는 방어도 대략 요 정도 크기에서 잡습니다. 사료 효율을 생각하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양식 광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한 크기에서 잡아줘야 채산성이 맞습니다. 어찌되었든 양식 방어를 하마찌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양식을 하면 아무래도 움직임이 덜하여 기름이 일찍 오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커져서 기름투성이가 되기 전인 하마찌 때 잡아줘야 1미터 내외의 대방어가 갖는 풍미를 어느 정도는 따라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방어, 부시리(히라스 혹은 히라마사) 그리고 잿방어에 대해 조금 알아보죠. 세 놈 다 농어목 전갱이과인 걸 보면 사촌지간임은 분명합니다. 방어는 일본말로 부리라고 합니다. 물론 겨울 생선이죠. 그런데 한 여름에 울릉도 근해나 추자도에서 최고의 맛을 내는 놈은 부시리입니다. 일본말로 히라스인데 이것도 일본 사투리라네요. 히라마사가 원래 말입니다. 그렇다면 잿방어는 여름과 겨울 사이 즉 가을에 잡히는 어종입니다. 일본말로 간파치라고 하지요. (생선 이름이나 요리법에서도 건축현장에서처럼 일본말이 많이 쓰입니다. 횟집이나 일식집에서도 좀 아는 척을 해야 면장 대접을 받습니다.) 아가미 모양이나 몸체의 색으로 구분을 하기도 하는데 외워봐야 금방 까먹습니다. 잿방어는 크기가 방어보다 더 큰 경우도 있고 몸체 색이 황색빛이 희미하게 보인다고 알아두면 좋습니다.

결론적으로 생선이 클수록 더 맛있고 비싸지는 놈의 대표가 방어와 삼치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방어를 싸구려 생선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이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한겨울 제철에 모슬포나 마라도 인근에서 대방어를 잡았다는 연락을 지인들로부터 받으셨다면 서둘러 비행기 티켓을 끊으셔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제주의 대정은 제주도 안에서도 소지역주의가 강한 곳입니다. 오죽하면 제주의 오지인 대정에 위리안치 시키는 유배형이 다 있었겠습니까? 영호남이 사이가 좋지 않다지만 평안도와 함경도의 불편한 관계도 매우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조선말에서 대한제국 즈음에서도 서울을 포함한 기호지방과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평안도 관서 지방 사이도 그 암투가 매우 심했다고 하네요. 만약 통일이 된다하여도 한반도는 그야말로 지역주의로 사분오열이 될 것이 뻔합니다. 어찌되었건 크게는 도 단위에서부터 다시 군 단위 그리고 면단위에 이르기까지 지역주의는 참으로 질기고도 질긴 숙명의 굴레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제주 전체가 흥청거리는 관광지가 된 까닭에 그런 소지역주의도 많이 없어진 느낌입니다. 저는 대정에 가면 일단 추사적거지를 꼭 한번 들릅니다. 그리고는 산방식당 밀면을 먹으러 가지요. 만약 겨울철이라면 모슬포항의 방어을 빼놓을 수 없고요.

이번 여행에서도 철은 좀 이르지만 방어회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조안에는 하마찌만 가득합니다. 언젠가는 대방어가 걸리는 날이 있겠지요.

점심시간 전임에도 모슬포항의 방어 전문식당에 가니 자리가 없습니다. 두 테이블이 필요하니 20분 정도 기다렸지요. 실내는 여 종업원 둘이 눈썹이 빠져라 뛰어 다닙니다. 한 사람은 40대 초반이고 한 사람은 20대 후반 정도로 보입니다. 모녀지간은 아닌 것 같고 언니와 동생 분위기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저희 테이블 담당은 젊은 친구입니다. 목소리도 크고 아주 싹싹하네요. 반면 나이든 종업원 언니는 계속 짜증입니다. 게다가 동생에게 계속 잔소리를 하며 갈굽니다. 동료 하나가 남들 몰래 만 원을 집어줬더니 젊은 친구는 신이 나서 찬을 더 가져다줍니다. 이를 봤는지 언니가 더 심술을 부립니다. 하여, 저희들이 둘이 무슨 관계냐고 몰래 물었습니다. 대답하길 둘 다 고용된 종업원일 뿐 아무 사이도 아니라네요. 그런데 방어회를 너무 많이 주문을 했네요. 5만 원짜리 두 접시를 시킨 데다 한치회까지 시켰으니 말입니다. 누가 방어회덮밥을 해먹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 착한 종업원에게 사정을 말하니 야채 썬 것과 참기름, 초장 등 회덮밥에 필요한 모든 걸 가져다주는데 그 심술언니가 또 성질을 냅니다. 그릇을 큰 거 한 두 개만 주지 각자 갖다 주면 어찌 하느냐, 빨리 다른 일을 해라, 저 쪽 테이블 치워라... 식당을 나오면서 제가 그 젊은 친구한테 또 만 원을 몰래 주면서 "이왕 일하는 거 신나게 일하세요! 그러면 복이 저절로 굴러 오니까." 그랬죠.

 평일의 모슬포항은 조용합니다.

방어로 유명한 두 식당이 이웃해 있는데 두 곳 다 최곱니다.

수조 안의 방어 사이즈가 바로 하마찌입니다.

제주의 맛이 전부 다 있습니다.

제주 하면 떠오르는 한치회입니다.

왠만한 제주 식당에 가면 고등어는 무조건 서비스입니다.

평소에 불가능한 낮술입니다. 일탈이 별겁니까?

기름이 촉촉하게 올라있습니다.

회덮밥 재료가 들어간 각자의 양푼이를 받아서 남은 회를 집어넣습니다.

사정없이 비빕니다. 즉석 회덮밥치곤 너무 화려한가요?

방어 매운탕도 나옵니다.

메이저리그 투수 류현진이 광고하는 그 라면까지 넣습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더라도 사리엔 X라면이 대세인 이유는 대체 뭘까요?

낮술 한 잔에 산방산이 제 쪽으로 넘어질듯 합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