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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진료가 끝난 뒤의 군것질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46>

 

20대는 쇠를 씹어 먹어도 될 정도로 왕성한 소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녀불문하고 그 나이엔 뱃속에 걸신이 들어있어서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고, 포식을 하고 뒤만 돌아서도 배가 꺼져 버리는 그런 때입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화양연화에 다름 아니지요.

그러나 동료들에게 다이어트 한다고 괜히 큰소리를 친 바람에 점심 식사를 김밥 한 줄에 왕뚜껑 컵라면으로 버티는 직원들도 꽤 있습니다. 물론 기혼직원들은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고, 매식을 하더라도 꼭 밥과 국이 있는 종류를 선택합니다. 최근엔 병원에서 한 식당을 정하여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해서 이런 고민이 사라지긴 했지요.

과거엔 점심을 대충 때우니, 7시 전후로 진료가 끝나면 뱃속에선 칼로리를 빨리 넣어달라고 아우성이기 마련입니다. 이 상태로 집에 들어간다 하여도 혼자 자취하는 직원들은 저녁을 제대로 차려 먹기가 힘듭니다. 씻는 둥 마는 둥 대충 해치운 뒤에 바로 쓰러지는 것이죠.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는 날은 '본방사수!!'를 외치며 졸면서 보기도 하구요.

점심을 대충 때운 직원들은 오후 5시 전후로 병원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케익 혹은 빵과 같은 간식을 먹으러, 몰래 주방(준비실)을 틈틈이 들락거리기 마련이죠. 그나마 제리(직원)가 입가에 묻은 빵부스러기라도 잘 떼고 나온다면 톰(원장)이 눈치를 못 채겠지만 바로 들키고 맙니다.

하여, 진료가 조금 늦게 끝난 날이거나 직원이 배가 너무 고프다고 아우성인 날엔 어김없이 간식을 배달시킵니다. 사실 간식이 아니라 진료 후의 군것질이 맞습니다만.

간식의 종류는 대한민국이면 어디나 비슷비슷할 겁니다.

감사하게도 환자분들이 피자를 배달시켜주거나 치킨을 주문해주는 경우도 꽤 있지만, 떡볶이나 순대 그리고 매운 닭발 등은 주로 제가 시켜주는 토속적인 메뉴입니다. 물론 캔 맥주나 생맥주는 필수지요. 가끔 소주도 시켜서 폭탄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정도로도 양이 차지 않는 날엔 아예 차수를 변경합니다. 조금 마시고 대리운전을 부르느니 아예 망가지자는 심산이지요.

순대, 떡볶이 그리고 각종 튀김은 솔직히 불량식품에 가까울수록 맛있습니다.

떡볶이에 '분칠'을 하는 순간부터 학교 앞 문방구에서 먹던 '추억의 군것질'이 아니라 아예 식사 즉 '끼니'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고추장 대신 간장으로 그리고 고기를 조금 집어넣었다고 '궁중 떡볶이'라 칭하는 것도 우습지요. 요즘은 '아딸'이니 '국대'니 혹은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죠스''조폭'이니 하는 브랜드 떡볶이들도 유행이라네요. 어느 관료가 떡볶이를 세계화한다고 200억이나 되는 돈을 허비한 것도 결국 그 양반이 '추억과 순수'를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요?

군것질을 맨입으로만 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폭탄주을 돌리거나 맥주를 마셔야 그림이 제대로입니다. 하여, 직원들 중에 가족이 생맥주집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대용량 피쳐잔 두 개를 부탁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대략 3000cc 피쳐잔에 2500cc 정도의 병맥주를 붓고, 소주를 반병에서 한 병(경험칙 상 반 병이 적당하더군요.)을 첨가합니다. 그리고는 숟가락으로 사정없이 휘젓습니다. 다음엔 준비된 맥주잔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이런 방식의 음주는 한 솥단지 밥을 먹는 것과 같은 동지의식을 느끼기에도 좋습니다.

 

결론은 진료가 끝난 뒤에 직원들과 같이 먹는 떡볶이, 순대 그리고 튀김 등은 허기를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역할 뿐 아니라 잠시 과거로 갔다 오는 추억의 타임머신이라는 말입니다.

 

일단 테이블 위에 펼치고, 술이 도착할 때까지 무사히 하루 진료가 끝났음에 감사기도 시간을 갖습니다.

흔히 먹는 일반 떡볶이입니다.

이 놈은 쌀 떡볶이인데, 식감이 좀 더 쫄깃합니다.

 

순대와 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순대나 떡볶이보다는 튀김이 좋습니다.

직원들 말이 원래 '아딸'이 튀김으로 성공했던 곳이라네요. 자기네 집 족보는 잘 모르면서, ‘아딸의 성장 스토리는 훤~합니다.

생맥주 브랜드별로 피쳐잔이 준비되었습니다. 예쁜 치과 로고까지 새겼네요. 얼마나 기공물이 없으면 기공사가 이런 걸 다 만들었을까요.

눈썹을 휘날리며 마트에 가서 소주와 맥주를 사옵니다. 그리고는 제가 지시한 레시피대로 붓습니다.

빈속인지라 안주는 실해야죠. 맥주에 최고로 어울린다는 뼈 없는 닭발입니다.

이것은 오리지널 닭발입니다. 모양새가 좀 거시기 하죠? 만화 영화 '요괴인간'이 떠오르네요.

동봉된 비닐장갑을 끼고 '닭발''' 그리고 '김가루'를 마구 섞어 비빕니다.

그리고는 밥을 동글동글 말아서 입에 넣습니다. 매워서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폭탄주를 마셔야 합니다.

알딸딸한 퇴근 전입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