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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가

치협은 왜 '파라벤 치약 파동'에 침묵했나

칫솔질에 관한 문제에서 스스로 발 뺀 꼴

‘파라벤 치약을 계속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환자가 이렇게라도 물어 온다면 당장 대답이 궁해질 수밖에 없다. 딱히 이렇다 할 설명을 보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 집단이 꾸물거리는 사이 국회의원실 보도자료 한 장으로 촉발된 파라벤 치약 논란은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번져 나갔다. 아이들 안전에 민감한 젊은 주부들을 중심으로 불매 움직임이 일고, 심지어 ‘무 파라벤’을 내세운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 블로그 등 개인 미디어를 통해 무방비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더 큰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부 언론들은 한술을 더 떴다. ‘대부분의 어린이들 소변에서 파라벤이 검출됐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슈화하기도 했는데, 그럼 섭취한 파라벤을 배출하지 않고 어쩌란 말인가. 이 기사들은 마치 파라벤이 소변으로 배출되지 않고 몸에 축적돼 있기라도 해야 하는 양 호들갑을 떨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파라벤은 가공식품뿐만 아니라 블랙베리 등 천연식품에도 들어있는 식품보존제이기도 하다는 것. 그러므로 치약에 넣지 않는다고 소변에서 파라벤이 검출되지 않을 순 없다는 얘기이다.   

지난 13일 한국독성학회가 국회에서 심포지엄을 갖고 전문가적 입장을 발표하고 난 이후에야 사태는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이날 독성학회가 파라벤 치약에 대해 내린 결론은 대략 5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치약 등 구강을 통한 파라벤 노출량은 화장품 등 피부를 통한 파라벤 노출량에 비해 훨씬 적다. 둘째, 입으로 섭취한 파라벤은 소변을 통해 빠르게 대사되기 때문에 몸 안에 거의 남지 않는다. 셋째, 그러나 유아 및 어린이에겐 성인에 비해 독성이 강할 수 있으므로 허용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넷째, ‘파라벤 프리’ 제품엔 다른 방부제가 들어있고, 파라벤을 대체한 방부제가 파라벤 보다 더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다섯째, 시중에 나도는 ‘독성치약’ ‘발암치약’ 같은 표현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

그럼 보름 남짓 온 나라를 들쑤셔 놓은 이 괴상한 논쟁은 대체 뭐란 말인가.

 

 

결국 독성학회가 나서 사태 정리

 

사실 독성학회가 심포지엄을 갖기 하루 전(12일) 대한예방치과 · 구강보건학회도 이 문제에 관해 미리 공식견해를 밝혔었다. 이날 연세치대병원 7층강당에서 열린 이 학회 주최 심포지엄에 참석한 조영식 회장 등 임원들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치협의 의견조회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파라벤 치약에 대한 학회의 공식입장을 이미 정리해뒀다’고 밝혔다.

이날 김백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구강보건학회의 입장도 하루 뒤에 가진 독성학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리하면 이렇다.

“파라벤은 식품보존제로 가공식품뿐만 아니라 블랙베리 등 열매에도 들어있다. 삼푸에도 비누에도 들어있고, 간장이나 잼에도 사용되고 있다. 암 유발 문제는 뭐라고 딱 꼬집어 규정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파라벤은 독성물질로는 분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 섭취하더라도 소변을 통해 배출되기 때문에 ‘몸에 쌓이면 어떻게 되리라’는 주장은 낭설일 뿐이다. 치약엔 특히 소량이 들어 있어 안전하다. 우리나라는 0.2%로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데, 현재 유럽은 0.4%, 일본은 1.0%를 적용하고 있고, 미국에는 아예 기준 자체가 없다. 만약 파라벤이나 다른 식품보존제의 사용을 금지시킨다면 식품 유통기한은 지금보다 훨씬 짧아질 것이고, 소비자들은 이를 구입하는데 훨씬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파라벤의 사용은 어느 정도 필요하며, 현재의 수준에선 안심하고 치약을 사용해도 좋다는 것이 우리 학회의 입장이다.”

 

 

‘터뜨리고 보자’식 국감자세도 문제

 

명쾌한 설명이긴 하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입안에서 일어나는, 그 중에서도 생활 속 예방치과 활동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칫솔질에 관한 문제인 만큼 독성학회가 나서기 전에 치협이나 학회가 좀 더 신속하게 대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국회의원들의 ‘터뜨리고 보자’식 국감이다. 김재원 의원은 이 문제에서 적절한 검증이나 논의의 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보도자료부터 냈다. 파라벤이 발암물질이란 한 가지 사실에만 매달려 소위 ‘뜨는 이슈’를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해 빗어질 파장이나 혼란에 대해선 내 알바 아니라는 듯.

이를 올바른 의정활동이라 보긴 어렵다. 국정감사의 취지는 물론 의정활동의 목표도 국리민복에 있다. 설사 알 권리에 관한 사항이라도 국회의원이라면 국민들의 입장에서 일의 전후를 살펴 파장을 최소화하도록 발표 시기를 저울질 할 수 있어야 하리라 본다.

아무튼 이번 소동이 파라벤이나 트리클로산 같은 방부제 성분의 사용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기회로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