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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바다의 날강도 아구란 놈에 대하여 - 마산 오동동 아구할매집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45>

 

33일은 3이 두 번 겹친다고 해서 삼겹살데이입니다. 물론 5가 두 번 겹치는 55일은 어린이날이자 오겹살데이구요. 그렇다면 59일은? 소리 나는대로 쓰서 조금 응용하면 아구데이입니다.

치과대학 선배님 중에는 턱관절 즉, 악관절만 전문적으로 치료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의 병원 전화번호 뒷자리가 ‘5975’입니다. 아구()만 치료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겠지요.

아구의 표준말은 아귀입니다만, ''자가 귀신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발음도 그렇고 해서 사투리인 아구가 더 많이 쓰입니다. 동해안 강릉과 주문진에서 주로 잡히는 삼세기’(삼숙이 혹은 삼식이)와는 종이 약간 다르지만, 인천의 '물텀벙'과는 같은 어종입니다.

아구는 남해안이나 서해안이나 어디서나 잡히는 놈이지만, 유독 마산을 중심으로 아구 요리가 널리 알려졌지요. (인천이나 여수, 부산 등도 나름 알려지긴 했지요.)

요즘 젊은 사람은 생아구를 주로 먹습니다. 포슬포슬한 살도 맛있지만, 아구 특유의 젤라틴 비슷한 질감을 즐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생을 좀 살아본 분들이거나 아구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으신 분들은 구할 이상 아구수육을 주문하지요. 아구의 간은 '앙끼모'라고 해서 일본에서는 프와그라처럼 대우를 해줍니다. 프와그라는 비릿한 피맛이 강하지만, 아구의 간은 피맛보다 독특한 풍미가 일품입니다. 내장도 씹는 질감이 쫀득하여 맛이 좋습니다. 그런데 간과 내장을 즐기려면 반드시 수육으로 드셔야 합니다. 고추장으로 벌겋게 버무리면 속칭 '니맛도 내맛도' 없어지는 것이죠. 찜과 탕에는 냉동 아구나 말린 아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간혹 비싼 생아구를 쓰기도 합니다만, 생아구를 그렇게 맵디 매운 요리로 만들어버리면 허탈해지지 마련이죠. 이는 고베 와규나 한우 특등급 부위로 양념갈비나 갈비찜 혹은 불고기를 만들어 먹는 것과 같은 '만행'입니다.

 

그런데 마산의 아구찜과 부산의 아구찜은 같은 듯 조금 다릅니다.

부산은 대개 생아구를 요리해서 먹지만, 마산은 건아구를 주로 먹어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마산 지역도 젊은 사람 입맛에 맞추어 생아구 반, 건아구 반 정도로 주문이 들어온다고 하는군요. 부산 쪽은 미더덕을 넣는 곳이 많지만, 마산은 건아구의 향취를 앗아간다고 미더덕을 넣지 않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건아구는 맛이 별로 없습디다. 아직 제 연륜이 깊지 못한 까닭이겠지요. 향토의 시인들이나 유지들은 건아구가 태양빛이 녹아든 향수 가득한 음식이라고 애써 변호하지만, 생태찌개와 북어찜 혹은 코다리찜의 차이처럼 그 선호도는 분명 갈립니다. 그 옛날, 냉동시설이 없어 잡힌 아구를 그저 말려서 보관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요리이니 생아구의 맛을 따라오기가 벅찬게 분명합니다. 기실, 건아구를 씹어도 목에 넘어가는 것보다 입 밖으로 뱉어 나오는 단단한 뼈나 못 먹는 껍질이 훨씬 더 많습니다. 결국 미나리와 콩나물만 실컷 먹었을 뿐입니다.

 

아래는 시인 김종삼의 '항해일지'라는 연작시 18편인 '술국 아귀탕의 추억'입니다.

서슬퍼랬던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적개심과 야유를 아귀에 비유해서 썼답니다. 그러나 요렇게 맛있는 아귀를 물어 뜯으며 비애를 삼켰다니 아이러니하군요.

 

     항해일지 18

                                             -아구탕집에서

 

아구란놈에대해이야기하고자한다.아구란놈이해저海低에서입을벌리고

물길을가고있을때는오징어.전광어.갈치.가오리.게따위가

통째로들어와뱃속에쌓인다.힘없고왜소한것들이눈을뜬채삶의본전까지

아구의뱃속에상납해버린다.철벽위장을가진바다의날강도아구란놈이빠

르게물길을가고있을때,불쌍한것들아무력한것들아가급적밑바닥에서더욱

머릴처박고소리내질말라.

 

나는확신한다.바다의날강도아구란놈이반드시이도시의어느곳에몇백

마리,몇천마리가눈빛날카롭게빛내며서식하고있는것을,이도시의가장기

름진물목에서음흉하게덫을놓아두고있는것을.

 

허전한 저녁나절,

종로에서 입을 벌리고 앞으로 앞으로 물길을 나아가면

하아, 네 뱃속에 와 쌓이는 것들.

몇 잔의 소주와 몇 잔의 비애

그리고 또 몇 잔의 적개심.

종삼鍾三아구탕집의 아구찜을 어금니로 물어뜯고 뜯으며

씹고 또 씹을 뿐이다.

 

 

마산(창원) 아구거리에는 아구집이 아귀떼처럼 몰려있습니다.

항구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또 복집거리가 나타납니다. 마산은 그야말로 아구와 복이 넘쳐나는 도시입니다.

아구요리가 나오는 동안 숨은그림찾기 재미도 쏠쏠합니다.

전통문화라 함은 결국 건아구 문화를 보존한다는 말이겠죠?

 

 아구수육입니다.

아구의 간인 앙끼모와 내장입니다.

건아구찜 작은 사이즈입니다. 보시다시피 모양새가 북어찜 혹은 코다리찜과 비슷합니다. 맛도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잘 보시면 미더덕이 보이질 않습니다. 게다가 콩나물도 대가리는 어디로 가고 몸체만 있죠.

위 사진은 노르웨이 베르겐 어시장에서 찍은 아구입니다.

이 쪽 동네 친구들도 아구를 먹긴 하나봅니다. 바이킹족들 닮아서 우리의 아구보다 더 흉측해 보입니다.

수원의 생아구 수육입니다.

 

콩나물 사이로 보이는 노란 것이 아구간입니다.

경남 통영에서 맛본 아구수육입니다.

신사동 마산옥의 아구수육입니다만 좀 짜더군요.

간과 내장을 집중 공략해야 합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